중년의 가을
중년의 가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10.0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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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시인

 
날마다 덮는 건 밤마다 덮는 이불만이 아닙니다.
떨어지는 꽃잎에 잊혀진 사랑도 덮고
소리없는 가랑비에 그리운 정도 덮고
구름 위의 꿈도 덮고 산새 좋은 가슴도 덮습니다.
오는 해는 늘 하늘에서 뜨는데, 지는 해는 왜 가슴으로 내리는가
눈물이 나는 밤엔 별빛마저 흐려지니 침침해진 시야에 아득한 세월입니다.
중년의 가슴에 찬바람이 불면 다가오는 것보다 떠나가는 것이 더 많고
가질 수 있는 것보다 가질 수 없는 것이 더 많고
할 수 있는 일보다 용기없는 일이 더 많아
어제 같은 지난날이 그립기만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강물도 넘치지 않을 가슴은 넓어졌어도
그 가슴에 찬바람이 불면 왜 이렇게 눈물은 깊어만 지는지
지나온 세월이 그저 허무하기만 합니다.
-"중년의 가슴에 찬바람이 불면" 이채의 시-

가뭄 끝엔 비가 그립고 비 끝엔 햇살이 그립더라.
술을 마시면 여자가 그립고 여자를 만나면 돈이 그립더라.
살며 사랑했던 기쁨과 슬픔이 막무가내로 달 밟은 울타리를 넘어설 때
몽땅 털어도 한 줌 밖인 가슴 무엇이 이토록 요동을 치는지,
대낮엔 멀쩡히 환하다가도 밤이면 어쩔 수 없이 깊어지는 어둠
먼 바람이 오랜 강물을 거쳐오면 눈물은 왜 봄날의 호수를 적시는가.
오동잎이 떨어질 만큼이나 그립다 못해 쓸쓸한 것은
세월 너머 아쉬움으로 피는 꽃잎마다 홀로 울고 웃는 삶이 허무한 까닭인가.
고요히 누운 가을밤 천장은 높고 손 내밀어 보면 떠나간 당신만큼이나 멀고
사람의 생각만 깊어지는 것은 세월의 발효 탓인가. 덜 익은 마음 탓인가.
중년의 가을나무여! 떠나고 보내야 하는 가지마다
그리움의 몸부림이 얼마나 아프면 껍질이 단단한 채로 갈라지겠습니까.
-"중년의 가을, 그리움이 밀려오면" 이채의 시-

가을은 고독의 숲을 지나 잠시 머무는 사색의 바람과도 같은 것.
이때 우리는 부서진 별을 안고 떠나간 옛 애인의 눈물을 기억해야 하네.
여미는 옷깃은 외롭고 한때의 사랑이 낙엽처럼 흩어질 때
중년이여! 우리는 우리가 아는 가장 쓸쓸한 노래를 불러야 하네.
사랑이 결코 인생의 성좌가 아니라면 당신은 왜 별빛으로 젖어드는가.
이별이 더이상 사랑의 무덤이 아니라면 낙엽은 왜 가슴으로 쌓이는가.
천지간에 홀로라는 서글픔만 눈을 감아도 떨쳐버릴 수 없을 때
이 저녁 황량한 갈대숲을 지나 중년이여! 우리는 또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 눈물이 아니라도 쓸쓸한 밤이다. 꼭, 상처가 아니라도 아픈 밤이다.
소리도 없이 울어야 하는 밤이라면 이제 그만 당신을 재우고 싶다.
-"중년의 가을밤" 이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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