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기와 빼기 - 혹은 감사의 철학
더하기와 빼기 - 혹은 감사의 철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10.0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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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하버드대 방문교수

 
하버드의 교실을 나와 센트럴의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꼭 만나게 되는 거지가 한 사람 있다.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 왠 거지? 하고 의아할 지도 모르겠지만 미국의 거리에는 정말로 거지가 많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쪽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지나가면 민망하게도 큰 소리로 꼭 “Thank you very much!” 하고 인사를 한다. 목소리도 밝다. 이러니 한번 정도는 푼돈이라도 안 줄 수 없다.
그런데 그가 던진 이 “Thank you”라는 말이 귓가에 묘한 여운을 남긴다. 욕지거리 같은 것보다는 어쨌든 듣기가 좋다.
평소에 나는 교양강의를 하면서 소위 ‘인문학적 대기’라는 것이 한 사회의 정신을 규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그 핵심에 ‘언어’가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어떤 언어들이 대기처럼 떠다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하고, 품격있고 바람직한 언어들이 항간에 살아서 떠다니도록 인문학자들은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에서는 그렇게 자주 들리는 말 중의 하나가 'Thank you'인 것이다. 물론 이 말이 100% 충실하게 화자의 마음을 반영하는 지, 이런 현상의 배후에 어떤 사회적-역사적-문화적 배경이 있는 지 등은 전문적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이 ‘감사’라는 현상이 표면상으로나마 살아있다는 것은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언젠가부터 이 ‘감사’라는 것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있다. ‘잘 되면 지 탓이고 못 되면 남 탓’이라는 시중의 저 반농담도 그런 현상의 일부를 반영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은 그때그때의 크고 작은 ‘좋은 일’들로 인해 그 추진력을 얻게 되고 그것이 곧 ‘행복’으로도 연결되는데, 그 좋은 일들이 사실 거의 대부분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임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통치자의 권력도 공무원과 국민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고 재벌의 부도 사원과 소비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누군가로부터 무언가 도움을 받으며 그렇게 우리는 삶을 꾸려나간다. 엄밀하게 보면 싼 한 톨 물 한 모금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결코 내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한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누더기 한 장도 내 몸에 걸치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결단코 편안한 이부자리에 들 수가 없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 세계와 인간의 일체존재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애당초 우리 눈앞에 현전할 수 없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가 그의 후기사유에서 존재(Sein)를 주어짐(Es gibt)으로 해석하면서 이른바 ‘Denken’(사유)을 ‘Danken’(감사)으로 연결시켜나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뿐만 아니라 그 개인들의 전체인 한 사회의 ‘모양’과 ‘빛깔’과 그리고 ‘온도’를 결정해간다. 그것을 우리는 사람이 사람에게 내뱉는 ‘언어’를 통해 감지할 수가 있다. 좀 추상적일지는 몰라도 어떤 언어들은 사람에게서 (특히 사람의 행복가능성으로부터) 무언가를 빼는 -(마이너스)로 작용하고 어떤 언어들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더하는 +(플러스)로 작용한다. 언어에도 수학이 있는 것이다.
세상을 둘러보면 어떤 사람들은 비판과 비난의 가시 돋친 언어들을 마치 무기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한랭전선을 형성하면서 바이러스 같은 증오를 키워나간다. 그런 것이 때로는 저 황사나 CO2보다도 더 위험한 것임을 사람들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비록 사소하고 작은 것일지언정 따뜻하게 평가하고 칭찬하고 그리고 감사하는 그런 세상이 좀 되었으면 좋겠다. 케임브리지시 메사추세츠거리의 저 거지에게서 우리는 그 감사의 철학을 좀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준 그 거지아저씨에게 감사한다. 'Thank you very much!'

창원대 교수·하버드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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