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란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자아성찰
봉사란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자아성찰
  • 이승우기자
  • 승인 2013.10.27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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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120드림하우스 봉사대 신희철 회장

 
저소득층의 집을 대상으로 재능기부를 통해 깨끗히 고쳐주는 일을 하는 창원시 의창구 용지동 ‘120드림하우스 봉사대’신희철(53) 회장은 ㈜대영전기의 대표이기도 하다. 신 회장은 “봉사활동이란 남을 위해 하는게 아니라 나 자신의 자아성찰을 위해 하는 것”이라며 봉사활동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강조했다. 어릴적 부터 교회 목사님을 하시면서 남에게 베푸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고 자랐다는 신 회장은 “어릴 때 가세가 기울어 많이 힘들었다”며 “그 와중에도 힘들고 배고픈 사람들을 돕는 아버지를 보고 저절로 봉사가 몸에 베어 머리속에 기억됐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봉사란 뭐냐는 질문에 대해 “20년째 꾸준히 날 위해서 하는 일.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이라며 “많은 사람이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이 아닌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신희철 회장과의 인터뷰이다.

-120드림하우스 봉사대는 무엇인가.

▲120드림하우스 봉사대는 창원 용지동사무소에서 형성한 봉사단체로 저소득 가정을 대상으로 집을 고쳐주는 봉사단체이다.
-다른 봉사활동도 하나.
▲20년 전 지인의 권유로 바르게살기 봉사를 하고 있다. 용지동 바르게살기 위원장을 하고 있고 의창구 바르게살기 위원회 부위원장도 맡고 있다.
-바르게살기를 하는데 120드림하우스도 하는 이유가 뭔가.
▲사실 바르게살기도 하고 있고 시간적 여유도 없을 것 같아서 안 한다고 거절을 했다. 근데 기술만 빌려주면 된다고 하니 그렇게 시간도 뺏기지 않을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다. 거창하게 사람들이 재능기부라고 하지만 부담스럽다.
-어떤 기술을 빌려주나.
▲나는 30년째 전기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집을 고칠 때 고장 나서 못 쓰는 전기 콘센트 등을 고쳐준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전기 콘센트가 고장 나지 않으면 필요 없지 않으냐고 하지만 사실 도배를 할 때 등을 다 분리해야 하므로 꼭 필요하다.
-120드림하우스 봉사대에서 봉사하는 분들은 몇 분인가.
▲나를 포함해 13명이다. 남자는 5명이고 여자는 8명이다. 전기, 인테리어, 설비, 도배 등 기술을 가지신 분도 있고 청소와 보조적인 일을 해주시는 분도 있다.
-같이 일하는 회원들이 바뀌는 경우는 없나.
▲잘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성분들 같은 경우 이사를 하셔서 같이 못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그 외에는 거의 바뀌지 않는다. 새롭게 들어오시는 분도 있다. 처음 120드림하우스 봉사대를 시작할 때 도배기술이 없었다. 도배기술을 배우기 위해 초빙한 여성분이 있는데, 그분 같은 경우는 120드림하우스 봉사대라면 두 달에 한 번 시간을 낼만하다며 같이 봉사하고 있다.
-집을 고쳐주러 가면 무엇을 하나.
▲쉽게 말하면 대청소다. 청소도 하고 장판도 깔고 벽지도 바르고 여기저기 고장난 부분을 고쳐준다.
-청소 순서가 어떻게 되나.
▲먼저 가면 가구를 다 뺀다. 그리고 장판과 벽지를 모두 뜯어낸다. 이제부터 나 같은 경우는 전기 관련해서 고장 난 부분을 고친다. 나머지 사람들은 부엌도 청소하고 화장실도 청소하고 고장 난 문도 고치고 심지어 부서진 변기도 새 변기로 교체한다. 그리고 벽지를 바르고 장판을 깔고 밖에 놔뒀던 가구들도 원상복귀 시킨다. 마지막으로 집주인에게 검사를 받는다. 혹시 없어진 물건은 없나 제자리에 없는 물건은 없나 확인하기 위해서다.
-말만 들어도 힘들어 보인다. 하루 종일 하나.
▲보통 하루 꼬박한다. 빨리 끝나면 4시에도 끝나는데 정말 치울 게 없을 때 그렇다. 보통은 6~7시에 끝난다. 특히 처음에는 도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없어 지금보다 오래 걸렸다.
-젊고 힘센 회원들은 없나.
▲없다. 아무래도 평일에 작업하니 자영업을 하거나 주부가 아니면 참여가 쉽지가 않다.
-회장이라 아무래도 가장 많은 신경을 쓰겠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신경을 써서 일한다. 특히 옥종균 부회장님은 더 신경 쓰시는 것 같다. 이분은 인테리어 일을 하시는 분인데 견적을 내기 위해서 답사도 가신다. 답사를 가면 그냥 보고 오는 게 아니라 그 집에 있는 장판·벽지 사이즈까지 일일이 체크하신다. 그리고 새로 깔 장판과 벽지까지 다 준비해 오신다. 이분이 준비를 해오시지 않으면 일이 더 오래 걸릴 것이다. 항상 고맙다.

▲ 창원시 의창구 용지동 120드림하우스 봉사대원들이 저소득층의 집을 고치는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많은 집을 고쳐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은.
▲부모님이 타지에 나가 돈을 벌고 아들 2명이 살았던 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 명은 고등학생이고 한 명은 대학생이었다. 아무래도 부모님과 떨어져 살다 보니 집이 엉망이었다. 집안에 있는 물건 중에 버릴게 3분의 2는 됐다. 그 양이 1t 트럭으로 2번 이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깨끗이 치웠으니 앞으로 잘 살라고 충고도 했다.
-용지동 주민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도와 주나.
▲다른 지역의 120 봉사대보다 지원을 많이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봉사를 하는 데 수월하다. 보통 방 한칸은 40~50만 원을 지원해 주고 방 2칸은 80~100만 원을 지원해 주고 있다. 금액이 부족하면 일부 회원들의 회비를 거두어 지원하려고 했지만 동주민센터에서 지원을 해주어 지금까지 별도로 회원들이 부담한 적은 없다. 간혹 휴식시간에는 동주민센터 직원들이 간식을 가져와 전달하기도 해 그때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나이 많은 노인분들의 집만 고쳐주는 줄 알았다.
▲꼭 그렇지는 않다. 용지동 내에 생활보호대상자를 기준으로 한다. 동내에 53개 통장님들이 집을 고쳐야 하는 사람을 추천하고 용지동사무소 담당직원이 직접 답사를 해보고 결정한다.
-집을 고쳐주고 인연이 돼 계속 연락하는 사람이 있나.
▲전혀 없다. 내가 집을 고쳐줬다고 생색내는 것 같고 한편으로 또 그 사람들이 불편해할 것 같아서 일부러라도 가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동사무소 담당 직원의 말을 들어보면 다들 깨끗이 산다고 한다. 내가 고쳐준 집에서 깨끗이 산다는 게 뿌듯하다.
-가족들은 봉사활동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나.
▲반대하진 않는다. 어릴적 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20년 을 넘게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사실 집사람도 봉사활동의 목적으로 아기 돌봄이 일을 한다. 부모의 출근 시간과 유치원 시간이 맞지 않을 때 잠깐 가서 아기를 보는 일이다. 돈은 받지만, 기름값도 안 되니 봉사활동이라고 봐도 된다.
-부모님도 봉사활동을 많이 하셨나.
▲아버님이 목사를 하셨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그 때마다 항상 그들을 도와 주셨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다. 자연스레 봉사가 몸에 뱄다.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하는 걸 보니 부유하게 살았나.
▲절대 그렇지 않다. 고향이 의령군 궁류면다. 아버지가 궁류교회를 창설하시고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촌 동네 교회이다 보니 재정이 안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교향을 떠나 창원으로 오게 됐다.
-창원에서의 생활은 평탄했나.
▲사실 중학교까지만 나오고 고등학교를 못 나왔다. 창원에서도 그 정도로 가난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일을 시작했고 그렇게 일을 시작하다 3년 후쯤 우연히 전기공사 일을 하게 됐다. 전기가 천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도 하고 있다. 85~86년에 아프리카에 일을 나가게 됐는데 그때 번 돈으로 빚을 다 갚고 내 회사도 차리게 됐다.
-회사에 부도가 났다고 들었다.
▲맞다. 2003년에 당시 영산중앙병원과 해남에 있는 저온창고 공사를 했다. 두 곳 모두 건설사가 부도가 나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덩달아 나도 부도가 났고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일을 이어올 수 있었나.
▲사람들이 날 신용했던 것 같다. 일을 하면서 나름대로 정한 4가지를 꼭 지키려 했다. 하나는 공사가 들어가면 손해가 나도 내 손으로 마무리했다. 2003년에 영산중앙병원과 해남 저온창고도 돈을 한 푼도 못 받았지만, 공사는 끝마쳤다. 두 번째는 고객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공사를 내 집처럼 생각하고 일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했던 공사는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확실하게 A/S 처리해줬다.
-어려운 삶을 살았다.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인가.
▲지금 시집간 딸과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 애들이 한참 유치원을 다닐 때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자영업이다 보니 일이 없으면 쉬는데 애들을 유치원 보내지 않고 차를 타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다. 해맑던 아이들의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아이들이 다 컸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힘들고 어려워도 항상 주위를 돌아보고 베풀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봉사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흔히들 봉사는 남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 봉사란 간단하게 말하면 결국 날 위해서 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다는 것은 맞지만 결국은 날 위한 것.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가 행복하고 기분은 좋으면 결국 나한테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봉사를 꾸준히 해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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