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읽습니까
어떤 책을 읽습니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1.08.1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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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시인

저녁을 먹던 중 중1인 딸이 대뜸 “우리나라 문화재 중에서 엄마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세 가지를 대고 그 이유를 말해 보시죠”라고 했다. 순간 반사적으로 “훈민정음, 직지심체요절, 조선왕조실록” 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세종어제훈민정음정인지서’에 잘 나타나 있다며 고1때 외운 이 전문을 즉석에서 그대로 읊어주었다. 

엉겁결에 그렇게 답안을 내고 보니 고려청자도 성덕대왕신종도 석굴암도 빠져서 좀 아쉽긴 했다. 그때 딸 왈 “가만 보니 엄마는 다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만 했네” 라며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관측기구인 첨성대를 왜 뺐느냐며 자기는 한글도 중요하지만 첨성대를 더 우위에 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이번 우면산 산사태와 인하대 발명동아리학생들을 삼킨 춘천펜션 산사태를 들었다.
듣고 보니 상당한 일리가 있었다. 평소 내 생각이 너무 편협했던 것 같아 꽤 찔렸다.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의 취지는 그동안 고교 고문시간을 통해 달달 다 외울 정도로 홍보가 잘 되어온 반면 경주를 그리 오가고 첨성대 앞에서 사진은 찍어도 그것을 그렇게 만든 선덕여왕의 의도는 미처 한 번도 헤아려볼 생각을 못한 채 간과해온 게 사실이다.
이래서 선현들이 일찍이 ‘문사철(文史哲) 600’을 강조했던 것인가. 인문학 책을 읽어도 자기 취향에 맞는 한 분야에만 몰입하지 말고 문학서 300권, 역사서 200권, 철학서 100권 이렇게 골고루 읽으라고. 우리 앞 세대는 이게 가능했다. 4.5세 때부터 서당에 가서 사자소학ㆍ명심보감ㆍ동몽선습부터 읽었다. 이런 책들의 내용인즉 다 문사철 통합교과과정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그때 서당학생들보다 더 나은 양질의 조기교육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아마 다양한 체험의 기회는 더 많이 즐겨도 인문학적 사고나 학문적 소양을 갖추는 학습태도 형성면에서는 엄청난 퇴행을 불러온 것 같다. ‘세살버릇 여든 간다’고 했거늘 우리는 세 살 아이에게 과연 어떤 책을 권하고 있는가.
‘아버지 날 낳으시고(낳게 하시고) 어머니 날 기르셨도다. 배로써 품어주고 젖으로 먹여주고 옷으로 입혀주고 음식으로 배불리 먹여주니 그 은혜가 하늘과 같고 그 덕이 땅과 같이 두텁도다’는 이것이 어디에 나오는 글인가 물으면서 집에서 초중고대 아들딸들에게 외우도록 한다면 각각 어떤 반응들이 일어날까.
“그때는 아이를 엄마가 안 낳고 아버지가 낳았다고? 누가 언제 날 낳아달라고 했느냐. 젖을 먹은 기억이 없는데 먹이긴 먹였느냐. 밥 주고 옷 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 게 어찌 은혜냐 덕이란 게 뭐냐. 새삼 이런 걸 왜 묻느냐.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등의 빈말이 더 무성할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지금 학생들에게는 ‘문사철 60’도 힘들 판이니. 이런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인사랍시고 여론을 쥐락펴락하는 이들이나 교수들이나 교사들 중에 자신의 독서록을 자연스레 공개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 학생들 실태는 대입논술 대비용으로 읽은 인문 고전읽기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책에 끌려 읽은 경우는 평균이 몇 권정도로 나올까. 어떤 고3 학생은 열권이 채 안 되는 것 같다고 실토했다.
청와대는 지난해에 이어 올 여름에도 이대통령이 휴가기간에 읽을 책에 대해 공개를 안했다. 대통령이 읽은 책이라고 꼭 따라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국민들 입장에서는 관심이 쏠리는 것은 사실이다. 참모들이 분명 아무 책이나 권하지는 않을 것이니까. 그렇다면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아끼는 책 3권을 자녀에게 권한다면 당신은 어떤 책을 추천 하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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