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에게 수의 옷 대신 즐겨 입던 옷 권장
고인에게 수의 옷 대신 즐겨 입던 옷 권장
  • 이경화기자
  • 승인 2013.12.30 1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례지도사 옥광호씨
 

진주지역에서 고인(故人)의 마지막 길을 엄숙하고 편안하게 보내드릴 수 있도록 양심적으로 유가족을 도와 장례를 치러주는 장례지도사 옥광호씨가 유명하다. 장례지도사란 상(喪)을 당한 유가족 요청에 따라 장례 상담, 시신관리, 염습, 빈소설치, 발인, 매장, 납골묘, 산골에 이르는 장례의식을 총괄하는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증을 소유한 사람을 말한다.


고인의 영혼이 무사히 영(靈)의 세계로 귀환하는데 필요한 의식절차를 갖춘 장례행사는 가장 정중하고 엄숙하게 진행되는 예식이기도 하다. 현재 진주지역에는 대학병원, 대형병원, 노인 병원을 합하여 최신식 시설을 갖춘 전문장례식장이 6개소에 이른다.

이처럼 양심적으로 유가족이 원하는 선에서 장례용품을 판매하고 장례를 치러주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옥광호 장례지도사를 많은 유족들이 찾고 있다. 특히 옥 씨가 유가족에게 장례용품의 거품을 없애고 저렴한 가격으로 바람을 일으키면서 기존 장례식장 사장들이 영업위축을 우려하는 등 진주시내 장례업계가 향후 시장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장례의식 문화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옥광호씨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인터뷰 내용 중 가장 마음에 닿는 것은 “유가족이 원하는 선에서 장례용품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양심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영업을 하는 장례사들이 없다”는 말이었다.


다음은 옥광호 장례지도사와 일문일답.

-장례를 치를때 느끼는 심정에 대해
▲사람은 태어났으면, 어떤 이유든 간에 저 세상으로 가기 마련이다. 고인이 안치된 영안실에서 가족들이 마지막 이별을 하면서 끝없는 슬픔에 잠기면서 영원히 이별하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뭉클하다.

-장례지도사의 마음가짐은
▲한사람의 죽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어떤 절차에 따라 어떤 식으로 편안하게 가족들이 볼 수 있는 곳에서 잘가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과 함께 삼오 일장을 하면서 고인이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 하는게 장례지도사 의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만의 고인이 입는 수의에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 경우 죽은 사람이 입히는 옷이 삼베로 만든 수의인데 상징적인 의미는 바로 한국인이 오랜 풍습이다. 과거에는 장례기간이 보통 5일장이고, 잘사는 집은 9일장, 사대부는 25 일장(踰月葬) 등이었다. 장례기간이 길어서 수의를 준비하는 시간이 충분했지만, 요즘은 거의가 3일장이므로 장례기간 중의 수의 준비시간이 충분하지 못하다. 그런데 선진국에서는 죽은 사람은 평상시에 입던 옷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입힌다고 한다.

저 같은 경우에는 평소 입던 옷을 아주 깨끗하게 입혀서 보내도록 상주에게 권한다. 예를 들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하면 평소에 입고 계신 고운 한복을 그대로 입혀서 관에 넣어드리면 그게 더 보기 좋고 아름답게 보이더라고 유족에게 꼭 권장 한다.

-고인에게 수의 옷 대신 색다르게 한복을 권장하는 이유는
▲예전엔 고인을 미라처럼 묶어서 관속에 넣어서 보내는 것을 볼 적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제가 잘 아는 지인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제의를 해서 고운 한복을 입혀 꽃을 움직이지 않게 만들어서 그 위에 얹어드리면 아름답지 않겠느냐며 권한게 시발이 됐다. 대부분 유족과 의논해 이 방법을 많이 택한다.

-이러한 방법을 유족과 충분한 의논을 하나
▲네. 장례문화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간에 가족들이 볼 적에 좀 더 편안하게 그리고 아 이정도 하면 부모님이 편안하게 가시는거 같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장례지도사가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장례행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은
▲실제로 장례문화에서 바가지가 많다. 저는 평소에 즐겨 입던 고인이 좋아했던 옷을 입혀준다. 그래서 평소 옷을 풍속에 따라서 비싼 돈을 주고 그 옷을 갈아입히는게 아니라 자기가 평소에 즐겨 입던 옷을 그대로 깨끗하게 입혀서 보내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상주들도 고맙다고 전화가 온다. 너무 양심적으로 해주는데 다른데 계산하는거랑 비교해보면 미안한 정도로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정직한 장례문화, 착한 장례문화, 양심적인 장례식장과 장례사들이 많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저는 상주 입장에서 상주라 생각하고 일을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칭찬하고 그런다.

-장례용품 판매마진에 남기지 못하면 운영비는 물로 충당한가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장의사는 관이나 수의를 팔아야만 돈이 되기 때문에 장례비가 비싼 이유가 거기 있다. 그러나 저는 봉사하는 의미로 영업을 한다. 수의 값에서 돈을 남길려고 절대로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입관비를 받으면 되니까 그렇게 청구를 하면 된다. 하루 일당정도 벌인다고 생각하고 일을 한다.

-장의사와 장례지도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장의사라는 말을 상당히 싫어한다. 옛날 사람들은 장례지도사를 보고 하는 장의사가 직업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모든 게 시대변천에 따라 대학마다 학과도 있고 장례지도사 자격도 있다.

 

 

-장례지도사가 되기 전 무슨 직업을 가졌나
▲진주에서 유통업을 오랜기간 했다. 커피 대리점을 15년 정도하다가 그만두고 무역을 2년 정도 하다 보니 소상인으로 대기업에 휘둘려지고 부딪히기도 했다. 이후에 옛 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장례지도사 일을 배워서 이일을 하게 되었다. 저는 처음에 장례일은 안할려고 생각했었는데 친구가 잠시 해보자 해서 시작을 하게 되었던 동기다.


-이 직업을 선택하여 후회 해본적은 없나
▲항상 오너로만 일을 하다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제 방향을 찾기 힘들었다. 그렇게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직원들한테 제가 좀 안다고 좀 휘둘렸다. 중간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고 그만둘까 고민도 몇 차례 하기도 했다. 그래서 병원장실에서 그만두겠다고 한적 몇 번 있었다. 사표를 내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하는데 그동안 중앙병원에 일하면서 같이 일하던 사람이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까 도와달라고 해서 그때부터 시작한 일이 오늘에 이르게 됐다.

-주위 사람들이 장례지도사를 어떻게 보나
▲후배들로부터 형님이 어째 이런 일을 하시냐고 그런 말도 많이 들었다. 형제들도 이 일 말고는 할 일이 없느냐고 그런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주변 지인들이 나를 볼 생각도 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은 지인들한테 소개도 해주고 해야 되는데 좀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요즘은 지인들과 친척들이 적극적으로 소개 해주신다.

-이 일을 맡은 후 가장 슬픈 장례는 언제인가
▲자식들은 부모님이 살아있을 때 잘해드리고 해야 되는데 자식들에게 대우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분이 제가 볼 때 가장 슬프다고 생각한다. 몇 년전 2층집에 가족이 살고 3층에 할머니 혼자 사시다가 돌아 가셨다. 그날따라 너무 추웠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데 사람혼자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계단인데 문을 여니까 문이 찬바람이 많이 들어왔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안고 내려오는데 몸에서 비늘이 수두룩했다. 아래층에 가족들이 같이 살고 있었는데 가족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죽은 할머니 몸이 깨끗해 질수가 있었다. 그런 상황을 봤을 때 너무 안타까웠다. 일찍 병으로 돌아가신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나이 드셔서 그렇게 자식들이 있는데도 외롭게 돌아가신걸 보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분도 자식들을 키울 때는 어느 자식 못지않게 키우지 않았겠느냐 생각해 본다. 할머니께서 병이 들고 자식들에게 외면 받고 말 못하고 세상을 떠나 가신모습을 봤을 때 참으로 안타까웠다.

-장례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장례식장과 동료들의 횡포는 없나
▲요즘은 경쟁시대가 되어서 서로 잘 해줄려고 하는 편이다. 특별히 횡포는 없다. 서로 장례지도사나 상조나 같은 업이 너무 많아서 거기서 경쟁이 좀 치열한 편이다.

-이 직업을 선택 후 보람을 느낀 점은
▲장례를 모두 다 해주고 돌아올 때 서로 고맙다고 유족과의 인사 해 줄때다. 돌아가신 그날부터 마칠 때까지 일을 마무리하고 가족들과 손잡고 웃으면서 얘기 나눌 때 보람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 다 일끝내고 가도 끝까지 혼자 남아서 마무리를 하고 갑작스런 일이 생길 때도 항상 옆에서 대비를 한다.

-정직하고 착한 장례지도사로 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너무 어려운 사람들을 어렵게 마진 없이도 해준 적이 있다. 근데 순수한 마진 없이 하루 일당도 없이 그렇게 해준 분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장례식장 비용이 비싸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장례까지 3일에서 5일장을 치르는 동안 그 돈까지 장례비 낼려면 막막하다 싶어서 제가 경비를 아끼는 방법으로 원가대로 해준 적이 몇 번 있다.

-이 일은 언제까지 하고 싶나
▲지금은 제 나이가 올해 56세인데 평생을 할 생각이다. 다른 것도 겸해서 할 수도 있다.

-주변에서 봉사도 많이 하신다는 들었나
▲제 입으로 봉사라고 말하기가 좀 쑥스럽다. 봉사는 남들이 얘기 해야지 자기 자신이 깝죽대고 얘기하는 게 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봉사라고 생각한다. 성당에 다니지만 성당에서 하는 봉사만 제대로 해도 잘하는 거라 생각한다. 근데 한 가지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지 여기저기 이름만 올리고 잘 하지 않는 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장례비용은 얼마정도 되나
▲최소한 장례비용은 200~250만원 드는데요. 지역마다 조금씩은 다르다. 금액을 가지고 논하면 이야기 거리가 안되는 것이죠. 리무진까지 하게 되면 특수 차량해서 가격이 일반보다 더 올라가고 운구 차량 리무진까지 하느냐 가족이 몇 명이냐 도우미는 몇 명 쓰느냐에 따라 추가 비용이 달라진다. 그래서 정확한 금액은 상황에 따라 금액차이가 난다.

-가장 적게 들어가는 장례비용 조언은
▲우선은 가정에서 돌아가시면 저희한테 먼저 의뢰를 하시고 바로 장례식장으로 모시지 말고 일단 병원에서 사망진단서를 병원에서 끊어야 경비가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사망진단서를 받고 장례식장을 가게 되면 거기서 몇십만원 아낀다. 어차피 돌아가시면 관은 써야 되니까 수의옷 같은 것은 쓰지 않고 평소 즐겨 입던 옷을 깨끗이 해서 입혀드리는 것이 좋다.

염빼 한필두필 들어가면 8~10만원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금액도 절약된다. 수의 값도 몇 10만원 절약된다. 도우미 같은 경우도 도우미가 음식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금액이 차이가 있다. 장례식장이 문제가 아니고 상주님 댁에 어떻게 하면 절약할 수 있는지 돼지수육 접시에 열 조각 올릴 거 아홉 조각만 올려도 부족하면 더 드리면 되니까 그런 식으로 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장례문화가 바꿔야 한다면
▲지금 예전에 비해 많이 바꿔져 있다. 우리나라는 너무 위배 적으로 틀이 짜여 있다. 제사 같은 것도 뭐 많이 차리는 거보다도 그런 형식이나 나열이나 순서보다도 내가 낳아준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까 감사하다는 의미로 하고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예를 갖추면 된다고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