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함은 희망이다.
선(善)함은 희망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05.1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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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모든 일은본인 스스로 만들었기에 그 해결도 스스로 해야지, 남이대신해줄 수 없다.


국법(國法)을 준수하고 각자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보물창고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사람은 자리에 따라 신분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자리가 주는 신분과 권리는 누리면서, 자리가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세월호의 참변에서 한사람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확인하였다. 나만 유리하고, 이익 되게 행한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도 엄청난 해가되는 가장 나쁜 방법이란 것도 확인하였다.

이기적인행위는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자신의 현생과 내생모두를 타락시킨다.

나는 나의임무를 다하고 있는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사람은 자리에 따라 책임과 의무와 권리가 주어진다. 그 책임과 의무를 다했을 때만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주어진 책임을 다하며 단순하게, 만족한 삶을 살아가자. 의사는 책임감 있는 진료를, 판사는 공명정대한 판결을, 강자는 약자를 도우며 살아가도록 하자. 덧없는 세월은 꿈과 같다.

적당히 세월이나 축내며 자기이익이나 챙기고 살아가는 비겁한 요령꾼과는 가까이 말라.

이런 사람은 친구로도 두지 말라. 그런 자들이 곁에 있으면 바른길을 가기 어렵고, 결국 나의 인생까지 망가뜨리고 만다. 거미는 작아도 줄만 잘치고, 구멍을 파는 데는 칼보다 끌이 낳고, 쥐 잡는 데는 사자보다 고양이가 제격이다. 요소요소에서 각기 맡은 구실과 쓰이는 데가 각각 다른 법이다. 한 결 같이 삶의 목표는 선함에 기초를 두어야한다.

선(善)함은 희망이다. 선의 칼이 부러지면 부러진 끝을 쥐고, 악(惡)과 끝까지 싸워야한다. 사람은 악과 저항하고 있을 때 생명력을 느낀다. 지사불굴(至死不屈)이다. 죽을 때까지 악에 항거하며 굽히지 말아야한다. 인간은 육체적 욕망, 제 잘났다는 교만심, 졸렬하고 불손한 이기심으로 인하여 모든 불행이 과거로부터 미래에까지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이 무서운 병을 치료하자. 인간의 마음이란 때에 따라, 가장 완성된 상태, 또는 가장 부패한 상태에 있게 된다. 우리가 선택할 길은 모든 악에 대한 용감한 저항이지 굴종이 아니다.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고, 착한 체 하지말자. 눈먼 말 워낭소리 따라간다.

때린 자리 또 때리고, 엎어진 놈 밟고, 시체에 칼질한다더니, 슬픔과 고통으로 기진맥진한 진도체육관의 유가족 틈에 숨어들어 지갑과 물건을 훔친 도둑이 있었다니 한숨만 나온다.

도둑질도 할 때가 따로 있다. 근주필적 근묵필치(近朱必赤 近墨必緇)이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좌우된다. 착한 사람과 사귀면 착해지고, 악한 사람과 사귀면 악해진다. 사람은서로 끼리끼리 무리를 이룬 것이어서 나쁜 친구를 사귀면 품행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나쁜 친구와의 교류는 대재앙의 서곡임을 알라.

목후이관(沐猴而冠)이다. 오는 선거에서도, 버거운 자리에 머물고자한 자들을 골라내버리자. 누구나배우고 익히면 질 좋은 삶이 전개될 것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욕망과 게으름 때문에 그런 것을 포기할 뿐이다. 새로운 기술, 지식습득의 달인이 되라.

게으른 습관이 성장의 장애물이다. 게으른 습관을 방치하면 늘 크고 작은 문제와 마주치 게 된다. 살면서 어려울 때는 누군가에 손을 내밀라. 구해줄 사람이 있다. 손 내밀지 않는 한 결코 구해낼 수 없다. 지금까지 제몫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를 생각해보자. 초침이 지나갈 때마다 삶도 지나가서 어느 순간, 늙음과 죽음이 소리 없이 찾아오게 된다.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려 노력하는 자에게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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