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권익신장·복지증진·사회발전 노력
노인의 권익신장·복지증진·사회발전 노력
  • 이경화기자
  • 승인 2014.08.19 1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주 대한노인회 일반성면 이둘남 분회장

 
사)대한노인회 진주시지회 일반성면 이둘남(73) 분회장은 나이를 잊은 채 한평생을 고향 어르신들을 위해 자원봉사로 헌신해 온 인물이다.
이 회장은 한마디로 노인의 권익신장과 복지증진 및 사회발전에 기여함을 기본 목적으로 크게 4가지로 구분하여 행정과 연계한 노인들 상대로 봉사활동 서비스를 하고 있다.
지금은 일반성면 노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노인들의 뿌리 깊은 지역의 고질적 병폐를 바로잡아 이곳 노인들 사이에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 회장은 노인회 분회장 뿐만 아니라 진주시 동부 5개면에 거주하는 만 65세 이상 노인이 다니는 동락노인대학에서 총학생회 회장을 맡고 있어 지역사회에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녀는 1941년 12월 진주시 사봉면 무촌에서 당시 정미소와 도자기(옹기)공장을 하는 대체로 부유한 가정에서 1남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나 1956년에는 미천 초등학교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반성초중고 어머니회장, 일반성면 적십자봉사회장, 일반성면 정화추진 여성분과위원장, 위민봉사원 진주경찰서 청소년선도위원 협의의장, 일반성면 자원봉사협의회장, 대한노인회 일반성분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노인회진주시지회부회장, 신촌경로당 회장과 노인회  분회장을 맡고 있다.
이 회장의 인생철학과 오늘날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노인들의 현주소를 들어본다.


다음은 이둘남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노인회 일반성면 분회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조직인가
▲우리 일반성면 분회는 사)대한노인회 진주시지회의 하부조직으로 분회가 있고 분회 아래로 각 법정마을별 경로당이 25개가 있는데 이들 경로당의 회장들이 분회 당연직 회원으로 등록되고 또한 이사진과 자문위원 등으로 구성돼 있어 이 지역 노인들을 대표하는 조직이라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대한노인회(이하노인회)에서는 어떤 목적과 또 진주지회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는가? 상세하게 설명해 달라
▲노인회는 한마디로 노인의 권익신장과 복지증진 및 봉사활동 등 사회발전에 기여함을 기본 목적으로 하며 진주지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분야는 크게 4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는 노인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노인으로서 품위향상과 그들에게 현대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을 배양하고 노인 각자가 지니는 잠재능력을 재개발시켜서 여생을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곳에 동락노인대학이 세워져 현재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는 경로당 활성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분회의 경우 25개 경로당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 및 서비스들이 가능한 모든 경로당에 누락 없이 지원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 내의 프로그램과 연계, 조정 지원 할 시스템을 발굴하여 노인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셋째는 노인취업센터운영을 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행정의 긴밀한 협조를 받아 노인들의 사회참여기회확대를 도우고 있다.
넷째로 노인자원봉사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노인세대가 가진 경험과 역량을 발휘하여 고령사회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노인의 역할을 감당하므로 써 삶의 질을 항상시키도록 유도하고 있고 우리 분회는 왕성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 동락노인대학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된 이둘남 회장이 선서를 하고 있다.
-봉사활동에서 어떤 봉사를 하는가
▲내가 동락노인대학 자원봉사 클럽 코치를 맡고 있는데 우리 봉사클럽에서는 동락관 노인들의 급식 봉사를 비롯해 농사철에는 지역농산물 곶감 깎아주기와 일반성의 명품인 논개전통한과의 성수기에는 박스접어주기와 인근 사봉면에 위치한 한마음집에서 봉사 활동도 하며 반성시장과 주변에 환경정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물론 노인들이라 젊은이들처럼 왕성하게는 못하지만 우리들의 체력에 맞게 맞춤형 봉사를 하고 있다.
--------------
행정연계 노인대상
봉사활동 서비스

노인대학 능력배양 제공
경로당 활성화 사업 전개

노인취업센터 사회참여확대

자원봉사클럽 삶의 질 향상
---------------

-일반성면에서는 이번에 노인들 사이에서 대단한 개혁이 일어났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정말 부끄러워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알고 질문하는 것 같아 간단하게 말하겠다.
우리 일반성면 분회에서는 16년 동안 한사람이 노인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장기집권(이런 표현이 맡는지 모르겠다)의 후유증이랄까. 노인들이 이제 회장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그로 인해 지난 6월에 본인이 여자의 몸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전임회장이 후임으로 내세운 한분이 나와 경합을 벌여 결국 투표로 결정하게 됐다. 그 결과 우여곡절 끝에 내가 새로운 분회장에 선출되어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선거 후유증이 많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흘러나오는데 어떤 후유증을 겪고 있는가
▲선거라는 것이 참 묘한 것 같다. 어떤 선거라도 상대성이 있으면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기 마련이고 패자는 겸허하게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분열, 갈등 등을 조장하게 된다는 것은 정치판만 아니라 황혼 길에서 서로 보듬고 가야할 노인들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아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어떤 분열과 갈등이 조장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했지만 인생 황혼 길에 있는 분들을 원망하면 무엇하겠는가. 모두가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 돌리고 싶다.

-동락노인대학 총학생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어떤 일을 하는가
▲동락노인대학은 지난 2010년에 설립됐고 학생의 구성은 진주시 동부 5개면에 거주하는 만 65세 이상 노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2010년에 입학하여 처음에 학장이 반장과 학생회장을 임명했지만 이제는 학생회도 자율로 반장들이 선출하는 기본을 세우고 있고 내가 현재까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락노인대학 총학생수는 몇 명이며 어떤 일들을 하는가
▲학생 수는 2014년 현재 420명이며 노인들이 할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매달 현장학습을 떠나 역사적 문화유산을 보고 배우며 체험하는데 회장으로써 학생들을 인솔하는 게 제일 큰 임무인 것 같다.

▲ 노인자원 봉사대원들과 함께한 이둘남 분회장(앞줄 오른쪽 두번째)
-노인회장과 총학생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과 어려운 일들이 있다면 어떤 일들인가
▲먼저 보람된 일을 든다면 나이가 들면서 집안에서 웅크려 있는 노인들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내어 상호 친목을 도모하며 친구가 되어 세상의 희비애락을 함께 나누며 삶의 활력소를 불어 넣는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들이 있다면, 어제까지 웃고 즐기며 생활하든 노인들이 하루만 결석해도 혹시 잘못 되지는 않는지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세상의 이치인데도 한 사람 한 사람씩 떠나가는 것을 볼 때 제일 가슴이 아프다.

-이둘남 회장의 경력이 화려하다고들 하는데 개인의 성장과정과 어떤 봉사활동을 하는지 상세하게 말해 달라
▲1941년 12월 진주시 사봉면 무촌에서 당시 정미소와 도자기(옹기)공장을 하는 대체로 부유한 가정에서 1남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고 1956년에는 미천 초등학교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반성초중고 어머니회장, 일반성면 적십자봉사회장, 일반성면 정화추진 여성분과위원장, 위민봉사원 진주경찰서 청소년선도위원 협의의장, 일반성면 자원봉사협의회장, 대한노인회 일반성분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노인회진주시지회부회장, 신촌경로당 회장과 노인회 분회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많은 사회봉사활동으로 각종 표창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몇 가지만 든다면
▲칠순이 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상을 별로 받지 못한 것 같다. 진주시가 통합되기 전 진양군시절 진양군수로부터 수차례 감사장을 받은 것을 비롯해 경남경찰청장 표창과 진주시교육장표창, 진주시장 표창, 대한적십자 총재표장 등을 받았지만 이는 관련단체 회장이란 명분으로 준상이 아닐까 생각하며 지금은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그래도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일반성에서 평생을 살고 있는데 어떤 직업으로 생활했는가
▲친정이 사봉인데 사봉 무촌과 일반성면은 지리적으로 바로 붙어있어 한 마을과 같은 곳이다.
부모님이 반성으로 시집을 보내는 바람에 반성에서 살게 됐고 이곳에서 터전을 잡아 3남1녀를 두고 모두 출가시키고 현재 한명만 미혼으로 있다.
처음에는 신랑을 꼬드겨 도시라도 나갈까도 생각했지만 오빠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고 없는데 나라도 고향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고 반성사거리에 당시에는 제법 큰 규모의 슈퍼마켓을 개업하여 20여년 운영하며 생활해 왔다.
그리고 경제적여유도 생기고 하여 농촌지역의 교통 불편 해소를 위해 버스정류장을 하기로 하고 당시 진양군시절에 허가를 신청햇는데 무려 3년 만에 허가가 나와 1989년 4월에 정류장을 개장했다. 대지 (818평) 건물 (120평)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시내버스 주차장사업을 하고 있는데 수익성은 어떤가
▲한마디로 수익사업으로는 제로이다. 순전히 봉사의 희생이 없다면 이사업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곳에 아파트라도 건설하면 수익성은 지금의 몇 십 골절은 나지 않겠는가
▲시내버스사업도 교통망 확충으로 시골 노인들 상대로 영업이 되고 있는 실정이며 이곳을 경유하는 버스는 진주-마산방향 직행, 완행과 남마성을 비롯해 동부 5개면 순환버스가 주로 우리 터미널을 경유한다. 사실상 외형적으로는 이곳이 동부지역 교통중심지역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노인회장의 중책을 맡으셨는데 회원들과 면민들에게 한 말씀하신다면
▲ “노인 회장 자리는 벼슬이 아닙니다. 봉사하는 자리이기에 더욱 겸손하게 행동하면서 내가 봉사한 열정이 자식들에게 누를 끼치면 아니함만 못합니다. 떠날 때를 항상 염두에 두고 면민과 노인들의 권익을 위해 힘 닿는데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이경화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