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스며들어 평생을 손수 농사 짓는 궁도인
고향 스며들어 평생을 손수 농사 짓는 궁도인
  • 이경화기자
  • 승인 2014.09.15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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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궁도협회 이병옥 회장

▲ 이병옥 진주시 궁도협회장은 1985년 궁도에 입문 30여년간 충과 예를 중시하는 궁도인 으로써 삶을 실천하고 있다.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에서 태어나 평생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역에 봉사하며 현재도 부지런히 90여마지기의 만만치 않은 쌀농사를 부부가 함께 남의 손도 빌리지 않고 새벽에 같이 일어나 농사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궁도로 심신을 단련하고 있다. 충과 예를 중시하는 궁도인 으로써 삶을 실천하며 진주시궁도협회장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휼륭히 한 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삶을 살아가는 있는 이병옥 회장을 만나 그의 인생철학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이병옥 회장과 일문일답.

-진주시궁도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어떤 단체이며 언제부터 회장을 맡았는가

▲2013년 1월부터 전 회원들의 추대로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진주시 전역 7개정에서 공군교육사령부내의 정과 지수정이 가입되지 않고 5개정에서 230여명의 궁사들이 모여 궁도인의 도를 익히며 심신을 단련하는 단체이다.
-진주시 궁도협회의 자랑이 있다면
▲진주시 궁도협회가 탄생된 것은 약 15여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동안 전국 남녀 궁도대회에서 단체전 우승과 준우승을 수차례 입상했는가 하면 전국남녀 개인전에서도 1등을하는 등 괄목한 성과를 거두고 있어 전국에서도 진주시궁도인들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 이병옥 진주시 궁도협회장은 1985년 궁도에 입문 30여년간 충과 예를 중시하는 궁도인 으로써 삶을 실천하고 있다.
-궁도협회에 가입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한가
▲먼저 나이가 제한되는데 60세 이하 여야만이 입계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리고 자기 거주지역이나 최단거리 정(활 쏘는 곳)의 사두(회장)의 승인과 그곳정의 전체사우(회원)의 3/2 이상 찬성으로 입회 할 수 있는 까다로운 절차가 있다.
-진주시 궁도협회장으로 어떤 철학으로 회원들의 권익과 화합을 도모 하는가
▲궁도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옛부터 도와 예를 중시하는 국궁으로 선인들로부터 이어져오는 전통을 고수하며 선후배가 오직 한마음으로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집중력으로 단합하기 때문에 별다른 방법 없이 협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궁도를 언제부터 시작하였는가
▲처음 궁도를 한지는 1985년으로 기억 한다. 벌써 30여년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고향 이반성면의 영봉정에서 부터 시작했다.
-많은 스포츠 중에 특별하게 궁도를 택하게 된 어떤 특별한 계기는
▲지금은 시대가 변하여 각종 생활체육이 활성화되어 스포츠가 대중화 되있지만 당시만 해도 시골지역에 마땅한 스포츠시설이 없는 영향도 있었지만 영봉정 초대 사두이신 고 월암 김홍수 옹으로부터 궁도입회를 권유 받아 시작하게 됐다.
-영봉정 에서는 어떤 일들을 해왔는가
▲작은 시골마을의 특성상 모두가 선후배사이이며 인척관계가 형성돼 있어 처음부터 봉사하는 자세로 일을 했고 나이가 젊어 자체 재무관련 일를 8년정도 맡았고 총무도 4년간 맡았다. 그리고 초보자들을 위해 사범으로 2년간 지도하다가 영봉정 사두를 5년간 역임했다.
-궁도인으로 입문 후 공인임을 증명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나
▲대한궁도협회에서 엄격한 기준에 의해 인정하는 유단자이며 전국남녀궁도대회 공인 심판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선배 궁도인에 대한 특별한 배려와 선행을 베풀어 주변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한데 어떤 일을 했는가
▲당연한 일을 선행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다. 나를 궁도인으로 성장하게끔 이끌어주신 고 김홍수 옹의 묘소를 보은의 차원에서 아무도 모르게 5여년을 벌초를 하게 된 것이 선행으로 와전된 것 같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현 영봉정 공삼식 사두께서는 초대 사두의 묘소를 관리하는 것은 전체 회원들이 함께해야 한다고 하여 현재는 모든 회원들이 함께 묘소를 관리하고 있다.

▲ 영봉정 초대 사두 고 월암 김홍수 옹의 묘소를 보은의 차원에서 벌초하고 제사를 지내고 있는 영봉정 회원들

-영봉정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것 같은데 그동안 어떤 일들을 했나
▲마땅히 사두로서 해야 할 일이지만 시골지역의 여건상 회원이 줄어들어 폐쇄위기 까지 간적도 있지만 고 김홍수 사두의 뜻을 생각하며 영봉정을 사수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당시 7~8명으로 운영해 오다가 발품을 팔아 15명으로 회원을 증강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이 제법 알려져 24명의 궁사들이 영봉정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총무 재직시 영봉정을 진양군시절 경로당으로 승인받아 복합휴게시설을 만들었고 과녁시설 보안 등 나름대로 일을 했다.
-태어나 한 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았나
▲이반성면 평촌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 곳 정수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지금은 학교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정수 예술촌이 들어 서있다. 이반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진주기계공고를 다녔다. 70년대 군을 재대 한 후 아직 한 번도 타 지역에서 생활해보지 못해 한마디로 촌사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젊은 시절 객지로 나가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텐데 고향을 지킨 이유가 있나
▲별다른 이유는 없다. 나 자신의 성격이  여유로운 성격이라서 그런지 내가 태어난 곳을 버리고 출세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인생을 살다보니 자연히 흙과 더불어 산다. 그리고 지금도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것에 대해서 후회는 없다.
-이반성면 토박이로 평생을 살면서 주민들에게 지역에 어떤 봉사를 했나
▲뒤돌아보니 그렇게 주민을 위해 특별하게 봉사했다 말할 수 없지만 새마을지도자생활을 약 4년간 했고 마을이장 생활을 8년간 했다. 당시 반공연맹 이반성면회장과 청년회장, 체육회부회장, 정수초등학교 총동창회장 등으로 봉사했다.
-정당생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은 현 새누리당의 텃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오래전부터 여당의 면지역 책임자로 일 해온 것이 전부이다.
-많은 농사를 경작하며 생활하고 있다
▲최근에 이 곳도 특수작물인 대형 하우스 단지가 곳곳에 설치되고 있지만 나는 조상이 물려준 땅을 보존하며 현재까지 논(沓)90마지기(59,400㎡)를 경작하고 있다.
-농사가 힘들지 않는가
▲물론 농사가 어렵다. 다행히 어릴때부터 농사를 지어오며 몸으로 눈으로 농사짓는 법을 익혀 온 탓에 90여마지기 농사를 여유 있게 하고 있다.
-많은 농사를 경작하면서 생활과 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그 비결은
▲우리나라 쌀농사의 장래는 어둡다. 개인적 생각이다. 국제정서와 맞물려 농촌의 소득 작물인 쌀 생산은 쇠퇴 일로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농사에 대한 철학과 법칙이 있다. 농사로 1남2녀를 아무 탈 없이 모두 공부시키고 출가시켰다. 부자로 살지는 못해도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음에 만족 한다.(호탕한 웃음으로 마무리)
-농사일을 하면서 궁도 협회장 일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 부부는 남들이 잠을 잘 때 논두렁을 타며 농사를 돌본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부부가 함께 궁도로 여가를 즐긴다. 남들은 언제 그 많은 농사를 짓고 활을 쏘느냐고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잘 사용하면 가능한 일이다.
-부부간에 궁도를 함께 즐기면 좋은가
▲한곳을 같이 바라보며 살아가는 부부는 크게 의견충돌이 없다. 새벽에 같이 일어나 농사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궁도로 심신을 단련하다보면 부부간의 사랑이 더욱 깊어진다. 특히 황혼길을 걸어가는 부부라면 더욱 그렇다.
-진주시 궁도협회 회장으로써 행정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현 협회에서 전국 대회 등 굵직한 행사를 치루고 있는데 궁도장(문산읍소재)에 식당이 없어 많은 애로를 겪고 있다. 이로 인해 진주시 이미지재고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궁도장의 시설보완이 절실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대부분 궁도를 어렵게 생각하면서 접근하려 하지 않으려 하는데 궁도는 남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정말 평범한 생활 스포츠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경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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