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라 보엠’을 아시나요?
오페라 ‘라 보엠’을 아시나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1.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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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상/경남과학기술대학교 식품과학부 교수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의 막바지에 지인의 소개로 ‘라 보엠’(La Boheme)이라는 오페라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오페라’ 구경을 처음 가는 것이라서 다소 상기된 기분이었다. 상식이 없기 때문에 미리 이와 관련된 자료를 습득하고 가야 한다고 해서 경남오페라단에서 발행한 책자를 열심히 읽었다.


우선적으로 작곡가의 생활 상황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그를 분석하였다. 그 내용을 간추려서 소개하면, 작곡가 푸치니(Giacomo Puccini)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루카에서 5대를 걸쳐 음악적 배경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가계에서 태어났으나 소년 시절은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보인 일도 없었고, 학교 성적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고생을 많이 하였다.

베르디의 ‘아이다’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 오페라 작곡가가 될 것을 결심한 푸치니는 어머니와 집안의 도움을 받아 1880년 21세 때 바라던 밀라노 음악학원에 입학하여 여러 스승들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24세에 음악학원을 졸업하고 이듬해 처녀작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푸치니의 재능을 인정한 스승은 그를 세상에 나가게 하려고 여러 가지 원조를 하였으나 성공적인 작품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계속된 제2의 작품을 작곡 하던 중 어머니와 동생을 사별하는 불행을 겪으며, 겨우 완성해 밀라노 극장에서 상연하였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푸치니를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결정적으로 확립해 준 작품은 ‘마농레스코’이다. 1893년의 초연은 대성공이어서 이 작품으로 푸치니는 비약적인 진보를 보였다. 당시 34세로 일류 작곡가로서는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창작의 기본적인 스타일을 확립한 이후의 향상은 눈부신 것이었다. 그 후 푸치니는 곧 명작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3년 후 밀라노에서의 가난한 학생 생활의 경험을 살린 명작 ‘라 보엠’이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토리노에서 초연되면서 그의 이름은 더욱 널리 퍼졌다. 이어지는 ‘토스카’(1900년)와 ‘나비부인’(1904년)은 ‘라 보엠’과 함께 그의 3대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걸작이지만, 어느 것이나 초연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푸치니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각국의 극장에서 앞 다투어 상연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그는 창작의 절정기로서 누구나 인정하는 베르디 이후의 가장 큰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지위가 쌓아올려졌다.

이후 ‘서부의 아가씨’(1910년)를 비롯하여 ‘제비’(1917년), ‘외투’(1916년), ‘성녀 안젤리카’(1917년), 희가극 ‘쟌니 스키키’(1918년)를 잇따라 작곡하며,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푸치니의 오페라는 일반 청중의 공감을 부르는 소재를 택하고, 사실적인 대본에 바탕을 두었다. 음악적으로도 후기 낭만파의 풍려하고 감미로운 수법에 입각하여 풍부한 감정을 고조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담한 창의를 더해 두르러진 사실성을 나타냄으로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또 어떤 작가는 푸치니의 ‘라 보엠’을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슬픈 풍경화라고 묘사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의 추억은 아름답다. 아니 고생하던 그 때가 황금시대로 추억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을 뒤돌아봄은 지난날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우리의 인생행로를 의미 있게 비추기도 한다.

우리들의 젊고 행복했던 그 시절을 추억해 보자. 돈은 없었지만, 친구가 있어 즐거웠고,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았어도 연인이 있었기에 행복하지 않았던가? 몸은 추워도 가슴은 뜨거웠고, 주머니는 비어 있어도 가슴에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그 때! 그 기쁜 우리 젊은 날의 풍경화가 바로 ‘라 보엠’이라고 극찬을 한다.

경남오페라단 창단 23주년 기념공연 마지막 날 성산 아트홀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과 함께 하는 영광을 얻었다는 것이 고마웠다. 나즈막이 웅성거리는 말소리들 사이로 시작을 알리는 세 번의 징소리를 들으며, 나도 문화인이 되는 것 같아 가슴 뭉클하다. 그 내용은 다음에 소개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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