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개인 스스로가 고해(苦海)의 선장이다
우리는 개인 스스로가 고해(苦海)의 선장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4.12.2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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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우리의 미래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속의 불확실한 그늘에 가려져있다.

언제 폭풍이 닥치고, 빙산과 암초에 부딪칠지도 알 수 없다. 인생은 마치 조각배를 타고 홀로 노를 저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배가 침몰하거나 난파되지 않고, 표류하지 않도록, 방향을 똑바로 보고, 조심조심 전진해야한다. 새해가닥아 오고 있다.

새해에는 어디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야할까. 마음을 짓누르는 고통의 무게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무기력으로 허우적대면서도 일상의 영위를 멈출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도(大道)는 체관(體寬)하야 무이무난(無易無難)이라, 큰 도(道)는 본체가 넓어서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거늘,”즉, 큰 도(道)는 가없어 육안(肉眼)으로 볼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눈으로는 너무 느린 것이나 너무 빠른 것도 볼 수가 없다. 육안으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내가본 것이 옳다고 고집하지 말아야한다. 불가에서는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등 다섯 가지 눈이 있다고 가르친다.

육안은 욕망의 눈이다. 그 욕망이 없어진 상태를 천안이라 한다. 천안으로 볼 때 모든 생명은 하늘이란 한 지붕아래 존재하고 있고, 대지(大地)라는 한집안에 살고 있다.

동식물, 인간, 모두가 똑같은 생명이며, 한 가족이다. 잘나고 못난 것, 귀천, 쉽고, 어려운 것, 성인도, 악마도 없다. 이런 것을 모르면 욕심 부리고 상처받게 된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채우기 어려운 것이어서, 모든 근심은 탐욕에서 비롯된다.

한 발짝씩만 양보하며 살아가자. 실패자들은 인생을 사는 지혜와 슬기를 배우려 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이 대인관계며, 인내와 극기이다. 이것을 외면한 채 사소하고 별것 아닌 일에 관심을 쏟고 몰두한다. 이 세계를 오염된 땅이라 하여 예토(穢土), 불난 집에 비유하여 화택(火宅)이라하고, 인생을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에 비유하여 고해(苦海)라 한다.

세상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고, 미래는 온갖 불안과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서잠시생각을 정리하고, 문제점을 찾아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출발을 준비하자. 그동안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정사정없이 속도전적인 삶을 살아와버렸다.

빨리빨리, 대충대충, 얼렁뚱땅, 반칙변칙을 밥 먹듯 반복하며 승자만 살아남는 패권주의,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변태적 경쟁의식이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못된 일가 항렬만 높다고, 주변에 사장님만 양산되어 바늘보다 실이 굵어 저버렸다. 허풍떨면 더욱 옹졸한 사람이 되며, 앞을 보는 눈이 바늘구멍 된다.

삶의 속도를 줄여나가자. 천천히 함께 손잡고 가는 삶의 길을 택해보자.

사회구조와 의식을 새롭게 전환하자. 우리는 개인 스스로가 고해(苦海)의 선장이다.

“자비로운 뗏목을 타고 용감하게 나아가면 능히 소용돌이치는 삼독의 바다를 건너가리라” 지금부터 더불어 살기를 결의하자. 웃음으로 시작해서 싸움으로 끝나고, 축복 속에 결혼하여 비극적 파혼을 맞는 용두사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음, 과식, 무절제, 타락, 고민, 불안, 공포, 질투와 번뇌 망상은 스스로를 죽여 가고 있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나의 고통이 누군가를 향한 분노로 치닫는 것도 경계하자. 남만 탓한 것은 오히려 서로에게 많은 상처만 주게 된다.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된다.

육체는 영혼과 양심과 인격을 담는 그릇이다. 잡다한 지식보다 인생을 사는 지혜를 배워 모든 사람을 포용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자. 그 길이 용두사미가 되지는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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