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을 지켜 온 등불
29년을 지켜 온 등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1.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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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창/진주향토시민학교장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시간을 진주향토시민학교는 배움의 등불이 꺼지지 않고 지금까지 운영을 해 오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을 안고 사는 사람들처럼 향토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 이름을 듣고 있으면 향긋한 흙냄새가 느껴집니다. 86년에 개교하여 많은 분을 모시고 배움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한 길은 계속 되었습니다. 마음의 아픔을 간직하고 사시는 분들께 배움은 가뭄에 단비를 내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야학과 인연되어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던 88년의 봄을 잊지 못 합니다. 근로청소년들이 주간에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야학에 나와 졸면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배운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 할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한 기다림인지 얼마나 배우고 싶어 하는 지를 전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을 했지만 그땐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야학의 인연을 끊고 생각의 저편에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다시금 저를 야학으로 이끌었습니다. 저의 작은 소망과 꿈이 야학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배움터에서 오전과 오후를 배우게 되면서 많은 분들의 아픔이 저의 아픔이 되었고 그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야학을 운영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더 배운 것이 많고 더 능력 있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보자. 다짐을 하고 시작했던 야학과의 인연은 95년에 대학을 졸업하면서 이어지고 96년에는 학교의 전반적인 업무를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갈 길이 멀어 목적지가 보이지 않아도 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열심히 학교를 운영했습니다. 그 마음도 96년 12월 차가운 바람과 함께 폐교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가진 것도 없는 저는 폐교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론을 통해 학교의 어려움을 알렸고 학교는 다시 새로운 배움터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늦깎이 제자들이 합격을 하게 되자 전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연세가 드셔도 열심히 가르쳐 드리면 합격을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경남에서 최고령 검정고시 합격자를 여러 번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 이후 부터는 자원봉사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전 과목 수업을 맡아서 하니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늦깎이 학우들이 특히 어려워하는 과목은 수학과 영어입니다. 수학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어려워 많은 고민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공식을 약자로 만들어 암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 듣지 못하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늦깎이 학우들은 암기능력이 젊은이들에 비해 조금 떨어지지 때문에 생각해낸 것입니다. 이차방정식의 두 근의 합과 곱을 찾을 때는 합곱의 반그작용이라고 설명하니 쉬었습니다. 이차함수의 꼭짓점 좌표는 반그작용이라고 해서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죠. 영어는 a,b,c,d부터 가르쳐 드렸지만 단어의 발음을 할 수가 없으니 발음의 특징에 대해 오랫동안 설명을 드렸습니다. ph는 묵음이고 mb가 나올 때는 b가 묵음이 된다는 것, kn이 오면 k가 묵음이 된다는 것, -tion은 (션)으로 발음이 난다는 것 등을 설명드리니 이해를 하시더군요. 전 이 교육을 통해 변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런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이 곧 늦깎이 학우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는 학생들에게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왔다 하더라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스승의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규학교가 아닌 야학은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놓여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도 있고 교육의 어려움도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그 눈물을 닦아 달라고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10대부터 80대까지 배움터에서 꿈을 펼쳐 나갔습니다. 그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야학이 필요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얼마나 배움터가 필요한 지 많은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평생 배움의 길에 몸을 담고 있어도 다 배울 수 없기에 우린 진정한 학문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야학을 21년 동안 제가 배운 것은 배우지 못한 분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가르쳐야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늦깎이 학우들에게 인격자가 될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것은 곧 겸손과 배려입니다. 무지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 많은 사람들은 교만해집니다. 무지했을 때를 잊고 살기 때문에 교만해 지는 것입니다. 배우지 못 한 분들이 스스로 배움이라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그 깨달음을 다른 사람과 나누십시오. 그리고 남을 배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관심과 사랑으로 이웃을 돌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르칩니다.

고통의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2015년도 힘차게 출발했습니다. 서부경남에 있는 이 진주향토시민학교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걸어갑니다.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오시는 분들께 언제나

희망을 노래합니다. 10대부터 70대까지 4월 시험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살다 보면 꿈을 잃게 되고 절망에 빠집니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꿈을 꾸고 사십시다. 그래서 언제나 밝고 건강하게 수업을 듣고 계십시다. 3시간 15분을 줄기차게 강의를 해도 눈을 크게 뜨고 듣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어두운 터널을 빨리 나오실 수 있도록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목소리를 높여 강의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힘들다고 쉬었다가 합니다. 전 쉴 수가 없습니다. 눈물을 닦아주는 스승이 되기 위해 21년을 외길로 왔습니다. 이 험난한 길을 걸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로운 길입니다. 외로운 길이라 할지라도 이 학교가 있어야 합니다. 배우지 못한 분들이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많은 곳에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한글도 모르는 분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습니다. 공부해서 자신을 위해 쓰지 마십시오. 이웃을 위해 사회를 위해 사용하십시오. 우리 주위에 한글을 몰라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더 큰 관심으로 주위를 둘러보세요. 2015년에는 배우지 못한 분들이 없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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