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火)의 진화(進化)
불(火)의 진화(進化)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07.01 18: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기식/진주문화원 회원

지구상에 인간에게는 공기, 물, 불은 절대적 3대 필수요건이 될 것이다. 구석기 시대에 불의 발견과 함께 나무나 검불을 모아놓고 모닥불을 피워 동굴의 어둠을 물리쳤고 신석기 시대에는 움집안에 화로를 설치해 컴컴한 내부를 밝혔다. 하지만 모닥불이나 화롯불은 맹수와 추위를 막거나 음식을 조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어둠을 밝히는 목적으로만 사용된 조명의 등장은 횃불과 등불로 봐야 한다. 횃불은 싸리나 갈대의 묶음에 붙인 불을 말하고 주로 밤길을 밝힐 때 사용했다. 등불은 기름을 연료로 사용해 불을 켜는 것으로 석유가 들어오면서 호롱불 기름으로 석유를 썼다. 소나무에서 나오는 끈끈한 액체인 송진에는 기름성분이 있어 관솔은 송진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 부분으로 관솔에 불을 붙인 관솔불을 등불의 시초로 보고 동식물에서 얻은 기름을 연료로 삼아 불을 켠 등잔불이 있다. 등잔은 삼국시대 유물로 발굴돼 그 이전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되나 고려시대를 지나 조선시대 말까지 우리 조상이 사용한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등불의 기구였다. 1880년 무렵 석유가 수입되면서 부터 호롱에 불을 켜는 호롱불이 등장했다.


촛불은 등잔불과 더불어 옛날부터 사용해 온 조명으로 초는 불에 잘 타는 성질을 지닌 고체 밀납이나 기름을 원통형 모양으로 만들어 그 중심에 심지를 박아 만들어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유물로 금동촛대나 초를 자르는 가위가 발굴돼 이미 삼국시대 부터 초가 사용되었음을 알수 있다. 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궁중에서나 상류층에서 사용하였고 일반인은 관혼상제때나 관청 사찰에서 특별이 사용하였다. 실내에서는 촛대에 옥외에서는 초롱이라는 등에 넣어 사용했다. 1887년 3월 6일 저녁 경복궁안의 건청궁 앞마당에 설치된 두 개의 유리공에 불빛이 켜지며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고종임금과 건청궁 앞에 모인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한호성을 질렀다. 와! 불이다! 불? 불이 아니라 빛이지! 인류의 두 번째 불이라는 전구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어둠을 밝히는 순간이다. 그 후로 1900년 4월 10일에 종로에 가로등을 설치해 거리 조명에 이용했고 1910년 부산에 전구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서 우리나라 곳곳에 백열전구가 켜지기 시작했다. 물의 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바꾸는 원동기 수력 터어빈으로 산촌에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을 낙차 시키면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이르켜 농가에서 사용하였다. 성냥이나 라이타가 나오기 전에 불을 일으키는 부시를 이용 불을 이르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