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유산의 재조명, 지역문화 이야기(7)
근대문화유산의 재조명, 지역문화 이야기(7)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2.02 18:3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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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교/진주문화원 연구실장·문화재청 무형유산지기

산업구조물 분야에서의 문화재 목록을 파악해본다.


공공용 시설로 진주역 차량정비고가 있다. 이 건물은 경전선과 호남선을 개통하면서 진주역에 설치한 차량정비고이다. 아치형 출입구 2개를 나란히 배치하였으며, 중앙 상부에 솟을지붕을 만들기 위해 왕대공 트러스를 변형하여 구성하였다. 벽면에는 한국전쟁 때의 총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해준다.

창녕 남지철교는 창녕과 함안 사이 낙동강을 가로질러 설치한 근대식 트러스 구조의 철교이다. 철근콘크리트 T형 다리로 이 시기에 제작한 철교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우수한 다리로 평가받고 있다. 통영해저터널은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동양 최초의 해저 구조물이다. 비록 공사의 주창과 시행이 일제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투입된 인력과 자재가 우리 민족에 의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정암철교는 1935년 철골트러스교로 준공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후 1958년 남아있던 2개의 경간을 그대로 살려 상부는 철골트러스 형식으로 재건하였다. 완전히 파괴된 부분은 새로운 교각을 세워 7개의 경간을 지닌 철근콘크리트 T형 보로 재건하였다. 경남 의령군과 함안군을 연결하는 교량으로서 경남 서부지역 교통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교량으로 가치가 있다.

마산 봉암수원지는 일제 강점기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과 일제 부역자들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석재를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가공하여 돌과 돌 사이에 모르타르를 채워 댐을 쌓았다. 이 지역 대다수의 시민들이 우물물을 길어 먹던 상황에서 건립된 수원지이며, 당시의 댐 축조 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업무시설로는 함양 구 임업시험장 하동·함양지장이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교토대학 부속 연습림을 관리하는 사무실로 1917년 건립되었다.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의 일식 목구조 건축물로 오목하게 들어간 현관과 기둥 형식, 처마를 받치는 공포 형식 등이 특이하다. 산업시설로는 통영 문화동 배수시설이다. 이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이 지역 일대에 물을 공급하던 배수 시설이다. 통영 시내가 잘 보이는 야트막한 야산 위에 있으며, 육각 형태에 돔형 지붕, 아치형 입구, 석조를 돌출시켜 장식하였다. 전쟁관련 시설로는 밀양 구 비행기 격납고가 있다. 이는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에서 연합군의 레이더와 폭격을 피하기 위해 만든 비행기 격납고이다. 일부 훼손된 부분이 있지만 전면의 아치형 개구부와 곡면형 일체식 구조가 잘 남아 있으며,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의 밀양 지역에서의 전투 준비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생활문화유산 분야에서의 문화재 목록을 파악해보면,

이는 기타 시설물에 해당하는 것으로,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은 수태산에서 채취한 2~3cm 두께의 납작 돌과 황토로 쌓아 다른 마을의 담장과는 차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의 기단, 후원의 돈대 등에도 이 같은 방식이 사용되어 담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을 주변 대숲과도 잘 어우러져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내고 있다. 거창 황산마을 옛 담장은 대개 토석암으로 담 하부는 방형에 가까운 큰 자연석을 사용하여 메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토석담과 활처럼 휘어진 전통담장길이 전통고가와 어우러져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산청 단계마을 옛 담장은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며 전형적인 농촌 가옥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담장 높이는 2m 정도로 높은 편이며, 담장 위쪽에는 돌출된 기와를 받치도록 판판한 돌을 담장 안팎으로 6~7cm 정도 내밀어 쌓았다. 산청 남사마을 옛 담장은 고려 말 정당문학을 지낸 강희백을 비롯하여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 하연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선시대 이후 남사마을은 성주이씨, 밀양박씨, 진양하씨 등 여러 성씨가 정주해온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에는 보물을 비롯하여 경남문화재자료 4점이 있으며, 마을 동편에는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면우 곽종석 선생이 강학하던 이동서당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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