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맞이하는 진주향토시민학교
30년을 맞이하는 진주향토시민학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5.12.20 18:2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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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창/향토시민학교장

1995년에 한문 수업을 진주향토시민학교에서 잠깐 했다. 한문 수업은 정기적인 수업이 아닌 임시 수업이었다. 그러나 야학교사로서 교단에 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1996년 봄에 학교가 폐교될 상황에 놓이게 되고 학교를 맡아서 운영할 사람이 없게 되자 학교를 정상화해야 할 책임을 지고 다시 시작된 야학의 일이 21년이나 되었다. 96년 봄은 새로운 꿈과 희망으로 다시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도 없고 자원봉사 교사는 없는 학교는 변하기 시작하였다. 학생 수도 늘고 자원봉사 교사도 있어 학교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잠시 12월 칠암동에 위치하고 있던 학교 공간을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학교 전세가 없어 어려움에 처했다. 그 때 손을 내민 것은 언론과 방송이었다. 다행히 TV를 통해 지역방송에 나가게 되었다. 새마을금고 이사장의 도움으로 학교 공간을 얻게 되었고 열심히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점심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했던 그 시간을 되돌아보면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시간은 우리에게 꿈을 실어주며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제자들은 이렇게 포기하지 않는 열정으로 꿈을 이루고 졸업을 했다. 98년 3월 다시 학교는 봉곡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역시 따뜻한 봄에 배움터를 옮기면서 학생 수와 자원봉사 교사 수를 합해 60여 명에 달하였다. 23평 남짓한 공간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교실 한 칸을 가림막을 설치하여 두 칸으로 나누어 수업을 하였다. 하지만 양쪽에서 수업을 하니 뒤쪽에 있는 학생은 양쪽에서 들려오는 수업에 애를 많이 먹기도 했다. 이렇게 학교는 배움이 못한 지역민들에게 배움을 기회를 제공해 학력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식을 쌓는 곳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서부 경남에는 진주향토시민학교와 같은 학교가 없어 우리 학교로 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멀리서 여기까지 달려오는 학생들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면 함부로 수업을 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해 알기 쉽게 가르쳐야 하는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돈을 벌기 위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서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2001년이 지나면서 학교에는 자원봉사 교사들이 거의 떠나 혼자서 모든 과목의 수업을 하게 되었다. 학생들은 많으니 수업 시간도 늘어나고 하루에 13시간이라는 수업을 혼자서 감당하기에 벅찼다. 또한 전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행복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학생들의 지식이 향상될 때마다 보람이 있었고 많은 학생들은 검정고시를 통해 합격을 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늦깎이 학생들이 합격이라 쉽지 만은 않다. 배워도 금방 잊어버리고 하는 모습에 포기했다면 이런 기적은 맛볼 수 없는 것이다. 남들은 검정고시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른다. 검정고시는 배우지 못한 분들의 한을 푸는 시험이며 이 시험을 통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는 소중한 제도이다. 하지만 늦깎이 학생들에게는 쉽게 도전하기 어렵다. 수학과 영어가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반복을 통해 하나의 문제 유형을 익히게 된다. 그 과정이 무척이나 힘들다. 힘들지만 그래도 도전해 볼 만한 것이다. 도전하지 않으며 결과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늦깎이 학생들은 배움을 통해 원하는 꿈을 이루게 되었다. 한 해 40명이 넘는 학생들이 검정고시 합격을 할 만큼 많은 성과를 얻게 되었다. 좋은 일에 는 어려움이 생긴다고 했던가? 그런 나에게 하늘은 큰 시련을 주었다. 2008년 1월 사랑하는 딸아이의 사고로 생사를 넘게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보낸 딸은 장애를 안고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이런 엄청난 일 앞에 폐교를 생각하게 되니 학교는 학생 수가 점점 줄었다. 하지만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학교를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아있는 학생들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준 가족들의 격려로 다시 일어섰다. 2010년 지역 신문에 학교가 소개되고 지역방송에서 함께 도움을 주어 학생 수가 다시 늘게 되었다. 열심히 학생들을 위해 가르쳤다. 무슨 힘으로 학교를 계속 운영할까? 라고 주위 사람들은 묻는다. 그것은 가족의 힘이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오는 보람이라 생각한다. 지역사회가 더 밝아지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곳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지역사회는 더욱 행복해 질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 수는 이전에 비해 줄었지만 야학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늘 느끼고 있다. 초등학교도 폐교되는데 야학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야학은 학생 수가 없어서 폐교하는 초등학교와는 다르다. 교육의 형평을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과거에 배우지 못 해 지금 배우고 싶어도 검정고시 학원 이외에는 배울 수 있는 시설이 없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나 늦깎이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 야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2015년 도교육청의 운영비 보조금 중단 결정으로 폐교의 위기에 놓인 학교를 다시 운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진주향토시민학교가 여기서 문을 닫는다면 지금 배우고 있는 학생들은 갈 곳이 없었다. 폐교는 막아야 하기 때문에 지역 언론을 통해 알렸다. 그리고 지인과 제자들에게 알려 후원금을 받고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려고 했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제자들과 지인들은 약간의 후원을 해 주었다.

또한 남동발전 허엽 사장님께서 매 년 500만원의 후원금과 재능기부를 약속하셨다. 그동안 지역의 후원이 학교를 운영하다 보니 폐교의 상황이 올 때마다 밤잠을 설치며 고민을 해 왔다. 이제 진주향토시민학교가 안정적인 배움터로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후원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공기업에서 이렇게 후원을 해 줌으로써 진주향토시민학교는 날개를 단 것처럼 마음이 기쁘다.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주시고 후원을 해주신 남동발전 허엽 사장님 이하 임직원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놓여져 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서로 함께 라면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아픔을 이해하고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베풀 때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 밝아질 것이다. 앞으로 진주향토시민학교가 지역사회에 배우지 못한 분들의 한을 풀어드리는 학교로 자리잡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내년이면 30년이 되는 진주향토시민학교가 더욱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주위의 많은 관심, 사랑과 후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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