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헤세의 기도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가 청춘이었을 때는 헤르만 헤세가 비틀즈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의 시 <안개 속에서>를 독일어로 외우는 친구가 있으면 그는 거의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오랜만에 그의 시집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 중에 예전에는 몰랐던 <기도>라는 시가 눈에 띄었다. 그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당신의 얼굴 앞에 서면/ 당신이 나를 조금도 살펴주지 않았다는 것을/ 달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고아처럼 적적히 거리를 헤매던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난과 견딜 수 없는 향수에 떨며/ 어린애처럼 당신의 손을 찾았을 때/ 당신이 나에게 오른손을 거절한/ 그 무섭고 어둡던 밤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린애가, 날마다 당신에게로/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던 시절을/ 나에게 기도를 가르쳐준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보다 어머니에게 더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는 신에게 거절당한 그 쓸쓸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찾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신은 모든 곳에 다 있을 수 없으므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유대인의 속담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어머니는 많은 경우 신의 역할을 대신 떠맡기도 한다. 뭐든 다 들어주니까.
그러나 우리들 속의 헤세는 이 시의 내용이, 이 간절한 기도가, 모든 어머니들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과연 알고 있을까? 이 세상의 모든 헤세들은 좀 너무 편의주의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언뜻 스쳐갔다. 어머니들도 어머니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이기도 하고 누나이기도 하고 아내이기도 하고 선생님이기도 하고 ...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여자이고 인간인 것이다. 모든 아들들이 안고 있는 삶의 무게는 고스란히 어머니의 것이기도 함을 그 아들들은 보통 잘 모른다. 그건 딸들도 마찬가지다.
헤세의 이 기도라는 시는 우리에게 신과 어머니를 그리고 우리의 삶을 되새겨보게 한다. 삶의 힘겨움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를 기도로 인도한다. 그러나 신은 쉽게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다. 삶과 세상의 현상을 보면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신의 부재’는 부인하기 어려운 진실로 다가온다. 신은 인간들의 인간적인 기도에 답이 없다. 신은 도대체 어디로 출타하신 걸까. 그가 돌아와 답할 때까지 모든 것은 고스란히 우리 인간들의 몫이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그 모든 짐을 다 지울 수는 없다. 어머니도 일개 여자고 인간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어머니들은 여전히 그 짐을 지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감사’가 필요한 것이다. 고마워하자, 모든 어머니들에게. 그리고 그것을 언급해준 헤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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