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주강홍의 정(釘)
시와 함께하는 세상-주강홍의 정(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1.08 16:07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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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주강홍의 정(釘)

돌에도 결이 있다
약점을 숨긴 돌의 침묵
저 단단한 속을 짐작해 보고
망치로 전신을 두드려본다
오금이 저린 곳은 소리가 다르다
장갑 낀 손에 간헐적 반응이 온다
악보보다 빠른 맥박과
계명도 없이 거칠어지는 소리
딱 그 부분

정(釘)의 눈이 빛난다
원시의 내력을 삼킨 우주가 세로로 벌어질
딱 그 부분
창조의 순간은 단순하다

한 호흡에 깊숙이 파고든다
미세한 금들의 신호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든다
돌의 침묵을 깬다
금속 마찰음
빅뱅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강홍의 ‘정(釘)’)

참 재미있는 시다. 돌과 돌을 깨는 정과의 탐색전과 전투 장면, 시인은 건축 일을 하는 사람이다. 놀랍지 않은가, 건축하는 일과 시 창작이라니, 하지만 건축은 또한 창조적인 예술행위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건축학과가 공대에 속해있지 않고 미술대학에 속해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건축은 주거시설의 제작이기도 하지만 예술작품의 창작과정이기도하다.

물결처럼 돌에도 결이 있다고 한다. 당연하다 오랜 세월 동안 지층의 압력으로 탄생한 돌은 차곡차곡 땅의 눌림에 따라 한 겹 한 겹 쌓이는 법이고 당연히 쌓이는 부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겹이 곧 결이 되는 것이다. 돌을 쪼갤 적에는 그 곳에다 정을 넣고 망치를 두드려야 돌이 갈라지게 돼 있다. 말하자면 돌의 명치인 셈이다. 그것은 보통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돌의 전문가라면 소리만 들어도 다 알게 된다.

아프리카의 사자를 보라, 먹이를 노리기 위해 숨을 죽이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달러들어 먹이의 목을 물고 널어져 숨통을 끊어 놓듯, 일순간 정의 뾰족한 부분이 돌의 그 틈새를 순식간에 공략하여 돌을 잘라버리고 그 돌은 하나에서 둘로 나누어지는 일종의 새로운 세상이 탄생 즉 빅뱅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 아주 가볍게 탁 치는듯하지만 정은 돌의 깊숙한 그곳으로 직행을 하게 되어 있고 단단한 돌이지만 그 틈으로 들어 온 정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약점을 숨기고 버티던 돌은 크게 마찰음을 내면서 침묵을 깨고 빅뱅을 이룬다는 논리이다. 그것은 작은 우주의 탄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교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삼라만상에는 우주 아닌 곳이 없고 우주는 늘 소멸하면서도 또한 늘 탄생하는 것이니, 돌이 갈라지는 순간 작은 개벽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시인은 해석하고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 표현이며 전문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순간인가.

모든 인연이 다 그렇다. 서로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어떤 인연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서로의 인연에 의해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이다. 굳이 불교론 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살펴보지 않아도 너와 나의 관계, 부부의 관계, 친구의 관계,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라고 하는 모든 것들은 처음부터 관계가 맺어질 수 있었던 것으로 예단은 할 수 없었겠지만 보이지 않는 실타래와 같은 서로 얽히고 얽힌 인연(결)에 따라 맺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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