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들쑥날쑥한 지붕
시와 함께하는 세상-들쑥날쑥한 지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1.15 16:1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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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들쑥날쑥한 지붕
 
이렇게 지붕 꼭대기에 올라선다
 
이렇게 지붕은 넓게 깔리고
지붕은 아무것이나 찬양하고
아무 지붕이나
 
날리고
 
지붕이 날아간다.
 
이유 없는 높이들이
높이뛰기를 하고 있다.
 
(이수명, ‘즐거운 높이’)
 
시인이면서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는 이수명 시인은 일찍부터 명성을 얻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시는 어렵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다. 한 편의 시를 대충 읽고 지나가 버리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쉽지 않다. 그녀가 자주 구사하는 시어(詩語)는 도형 학적인 언어나 간결한 형태를 즐겨 사용한다. 어떻게 보면 차가운 금속성 같은 언어로 오인되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적인 냄새가 풍기는 일종의 ‘해체시(解體詩)’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시는 여러 번 꼼꼼히 읽어보면 단순한 언어를 동원했지만 흐름은 결코 단순한 유희가 아닌, 다소 깐깐한 내용이라는 양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어느 날 시인의 눈에 표착된 광경이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제목부터 특이하다. 즐거운 높이…즐거운 높이라…무슨 동시의 제목 같다. 하지만 승강기를 타고 고층 빌딩으로 올라가 보자. 아니면,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집 그 집 아래로 다른 많은 집이 보이는 그 집의 옥상으로 올라가 보자. 저 아래로 단독 주택의 지붕들은 넓게 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붕에는 그 집에 사는 주인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색상들로 덧칠해져 있고 지붕의 모양 또한 일정하지가 않을 것이다.

넓은 옥상인가 싶다가도 이웃집에는 뾰족한 서양식 지붕을 하고 있고 정사각형의 지붕인가 싶다가 이웃집은 기역 형태의 지붕이고 디귿 형태의 지붕이기도 하며, 옥상이 밋밋한 지붕인가 싶으면 이웃집에는 대형 화분으로 작은 정원을 꾸며 놓기도 하고 저녁 무렵이면 커피를 마시면 시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 파라솔을 올려놓기도 한다.
 
그러한 형태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화로우며 지극한 개성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높낮이가 다르고, 크고 작은 지붕들이 들쑥날쑥하며, 때에 따라서는 마치 대궐 같은 집은 바람에 날릴 듯 휘황찬란하다. 이러한 모습이 감수성이 뛰어난 시인의 눈에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마치 심오한 언어학자처럼 어휘력이 발산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우리에겐 이런 일상적인 광경까지 포착할 수 있는 시인의 고차원적인 내공과 언어 동원력은 종잡을 수가 없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시인이 사는 집은 언덕 위에 있거나 아니면 옥탑방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매일 들쑥날쑥 삐쭉 뾰족한 사람들의 집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객관적인 거리에서 이를테면, 높은 곳에 선 시인이 저 멀리 펴져 있는 세상의 지붕들을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바라보고 있음을 보이는 듯 그려가고 있다. 독자들이여 오늘부터 승강기를 이용할 적에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멀리 작은 지붕들과 산과 하늘도 함께 바라보자. 그러면 많은 지붕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여러분들을 맞이할 것이다.

넓게 깔린 지붕들
하느님께 기도하듯 뾰족한 지붕들처럼
들쑥날쑥 높이뛰기를 하는 지붕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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