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어머니는 괜찮을 것이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어머니는 괜찮을 것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5.13 16:1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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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어머니는 괜찮을 것이다

죽을 돈을 헐었다.

매달 십만 원씩 꼬박고박 붓던 적금
닭의 종아리처럼 앙상한 다리
종종걸음으로 늘 허공에 떠있던 발뒤꿈치
겨우내 엄마의 재산 늘어가던 숫자
김 공장은 그만 다니세요. 무릎 아픈데
취나물은 그만하세요. 만류에도
통장의 개수 줄지 않았다.
닳아지는 무릎뼈 만큼 늘어나는 제목의 돈
가끔 집으로 가는 길을 헤맨다.
순식간에 수십 년 길 잘라내기도 한다
길을 헤매는 동안에도
죽을 돈을 해야 한다고 곤드레를 심는다
갈 때 자식들한테 짐은 안돼야지
날 보러오는 사람들 밥 한 그릇은
내 손으로 대접해야지 하던 어머니의 통장
큰아들 장가 밑천으로 헐었다.

아, 이제는 괜찮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십년은
죽을 돈이 없어서 어머니 괜찮을 것이다.

(김령, ‘죽을 돈’)

‘죽을 돈’이라는 시를 보고 불현듯 오래전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한푼 두푼 모으실 줄만 아셨지 쓸 줄은 몰랐던 어머니, 고생만 하시고 맛있는 음식조차도 돈이 아까워 잘 드시지 못하여 늘 종아리가 앙상했던 어머니,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발뒤꿈치를 땅바닥에 닿을 틈도 없이 바쁘게 사셨고 걸음은 얼마나 빠르시던지 김 공장으로 돈 벌려 가시랴, 취나물 뜯으러 다니시랴 하루라도 쉴 날이 없으셨다.

처음부터 이 시(詩)는 파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죽을 돈’이란다. 죽는데도 돈이 든다? 저승길 가는 노자? 그런데 그 돈을 헐었다? 파격은 파격으로 연결되고 있다. 아무튼,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갈수록 눈물이 난다. 무섭거나 슬프거나 괴로워서가 아니다. 혹은, 기쁨의 눈물이라고 치부하기에도 애매하고 고마움의 눈물이라고 생각하기에도 그렇고 아픔의 눈물이라고 하기도 분명하지 않은 희한한 눈물이 난다. 그렇다 이것은 단순히 부모님으로부터의 내리사랑이라는 세속어로는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말이다.

무릎뼈가 닳도록 모은 돈은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한푼 두푼 모은 것이다. 노모는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모일 때마다 정말 행복했을 것이다. 세월은 자꾸만 변하여 주변 환경이 변하기 어언 수십 년 오래된 동네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 버렸고, 연로하신 어머니의 기억력마저 흐릿하여 늘 다니시던 길마저 변해버려서 헛갈리는 지경이 와도 오로지 바쁘게 돈을 모으신다. 돈에 욕심이 나서 돈을 모으시는 것이 아니라 늙어도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이다. 그렇게 모은 돈인데, 그 돈을 당신의 큰아들이 장가간다고 하니까. 또 결혼자금으로 덥석 내주신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그럴 때 동네 사람들에게 등장하는 어머니의 멘트는 당연히 ‘아들놈은 필요 없다는데, 내가 그럴 수 있어야지’일 것이다.

끝내, 시인은 그냥 울부짖듯 되뇐다. “아! 어머니 당신은 죽을 돈을 지금 다 서버렸으니까, 그래서 다시 죽을 돈은 십 년은 더 모아야 할 것이니까, 그리하여 십 년은 더 사셔야 할 것이다.라는 울음 같은 넋두리로 ‘어머니는 괜찮다. 죽을 돈이 없어서 죽을 수 없어 십 년은 더 사실 것이니까’라는 말로 자기위로를 하고 있다. 전통적인 어머니의 내리사랑과 부끄럽고 미안한 자식들 애환을 진한 감동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아름답다. 가정의 달 5월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내리사랑이 가슴 찡하게 울리는 한 편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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