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녹슨 얼굴들
시와 함께하는 세상-녹슨 얼굴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5.27 15:5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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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녹슨 얼굴들

이승에서 삼십 년
육신을 빠르게 쓰고 저승으로 이사한 아들 사진을

팔십 년째
육신을 아껴 쓰고 계시는 아버지가
느리게 문갑 문을 열어 만지고 계신다

배경은 경주시 노서동
전에 살던 적산가옥 꽃밭
이국종 사냥개가
긴 혀를 내밀고 함께 웃고 있다

계시는 사진 한 장과 사냥개 사이엔
벽지처럼 살고 있다
앞모습은 보아서는 아니 될
가족의 녹슨 얼굴들이

(김소연, ‘계시는 아버지’)

시인의 시집 <눈물이라는 뼈>에 실린 작품이다. ‘눈물이라는 뼈’ 눈물은 아시다시피 아픔으로 흘리는 흔적이라고 한다면, 뼈라는 존재는 사건의 핵심이라고 정의를 내린다고 하면 될는지…시를 소개하기 전부터 왜 시인의 시집을 소개하는가 하면 그녀의 시에는 너무나 많은 슬픈 감정들이 내재해 있고 그 감정들이 곧 그녀의 한(恨)을 만들게 되었으며 그 한들이 김소연의 시로 부활하게 된 것이리라.

‘계시는 아버지’라는 시도 마찬가지다. 시인에게는 팔십을 훌쩍 넘긴 아버지가 계시고 그 아버지에게는 요절한 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아들은 시인에게 오빠인지 남동생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가족이라는 존재 그것도 너무 젊은 나이에 이승을 떠나서 지독히 그립고 가슴에 한이 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죽음에 대해서 그녀보다도 더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이다. 그래서 자식이 죽으면 산에 묻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이 의미하는 바를 독자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아버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지 오래된 지금도 아들을 잊지 못하시고 낡은 문갑을 열고 자식의 사진을 만지작거리신다. 사진 속의 배경은 그녀의 고향 집 경주시 어느 적산가옥, 긴 혀를 내밀고 있는 이국종 개와 함께 꽃밭에서 찍은 사진이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적산가옥과 이국종의 개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 중산층의 위치에서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사진 속에 있던 아들과 사냥개는 없다. 사진 속의 오빠가 없는 이유는 알고 있지만, 사냥개가 없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 첫째 사냥개가 없는 이유는 오빠의 죽음과 관련되었거나 개의 수명이 십 수 년이 좀 넘는 세월이 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이유가 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자보다는 후자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 이 시의 효과가 좀 더 극적일 수 있을 것 같다. 네 번째 연에서는 비록 사건과 관련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오래된 슬픔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은 오래된 벽지처럼 낡았지만, 슬픔을 담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아직도 바라볼 수 없기에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으며 보아서는 안 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그것도 녹슨 얼굴 즉, 쇳덩어리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 듯, 오랜 시간이 흐른(가족들의 얼굴에 녹슨) 지금까지도 슬픔이 가시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한 편의 시가 사람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것 같다. 그녀의 시집 제목처럼 눈물이 난다, 흐른다 등의 상투적인 표현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시인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짐작할 수 있는 시로 볼 수 있다. 눈물이라는 뼈처럼 슬픔의 핵심을 눈물로 표현하되 눈물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깊고 오래된 슬픔을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언어를 동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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