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찔끔 놀라게 하는데
시와 함께하는 세상-찔끔 놀라게 하는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6.03 14:53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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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찔끔 놀라게 하는데

내가 다섯 해나 살다가 온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 동물원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길러지고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 구경거리의 마지막 코스
‘가장 사나운 짐승’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우리 속에는
대문짝만한 큰 거울이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찔끔 놀라게 하는데

오늘날 우리도 때마다
거울에다 얼굴도 마음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구상, 가장 사나운 짐승)

구상 선생은 시인이지만, 일생을 구도자처럼 살아오신 분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대부분 잠언처럼 문예의 기교적인 면보다는 내용적으로 교훈적인 방향으로 치중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선생의 시는 영어, 프랑스어, 스웨덴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되어 이미 시인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린 편이다. 선생은 일생을 천주교인으로 함경도 문천에서 태어났지만, 6·25 때 월남하여 타계하실 때까지 경북 왜관에서 일생을 마치는 동안 일생을 천주교인으로 사셨지만, 노후에 폐결핵을 앓았다. 마침 의사인 부인 서영옥 여사의 간호로 호전되기도 했지만, 한 때 악화 되어 하와이에서 요양을 간 적이 있는데, 이 시는 그때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시의 내용은 기교적인 면이 별로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도 내용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기 형식의 이 내용에서 눈에 띄는 내용은 하와이 동물원에서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동물’이 있는 우리에 당도했다는 것이고 거기에는 동물이 아닌 대문짝만한 거울이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동물은 바로 인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동물이 사자가 아닌, 인간이라는 것, 초원에 사자도 배가 부르면 옆에 살찐 영양이 지나가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인간은 아흔아홉 냥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한 냥을 빼앗기 위해 안달하는 동물이 인간이라는 사실과 연관이 된다. 또한, 요즘 지구촌 곳곳에서 환경오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 환경오염의 주범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의 어느 동물들은 세상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간혹 인간이 만든 우리 속에서 자라는 동물들은 그 배설물로 주변을 더럽히기도 하지만 그것조차도 인간이 만든 우리에서 비롯된 것이니 세상에서 잔인하기로 하다면 정말 인간보다 더 심한 경우가 없을 것 같다.

선생의 다른 시 <몰염치, 파렴치 세상> 선생은 대학 부정 입학 사건의 TV 보도에/ 그 연루자들이 경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이고/어떤 이는 옷깃으로 얼굴을 가린 장면을 보다가/ “저렇게 부끄러운 짓을 하기는 왜 한담?”/ 하였더니 함께 보던 집안 젊은이가/ 저들이 어디 부끄러워서 저러나요/ 얼굴이 널리 알려지면 앞으로 사는 데 불편할까 봐 그러는 거지요/ 그럼 저 부끄러움도 가짜란 말씀이군 <하략>

우리는 선생이 말하는 가장 사나운 짐승의 실체를 주변에서 자주 보고 있지만, 지금 세상에는 그 사건도 이제는 흉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만약 선생이 지금까지 살아계신다면 이 시대에 대해서 어떤 말씀을 하실까 두렵다.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짐승을 마침 하와이에서 봤다는 내용이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그의 다른 시 <몰염치, 파렴치 세상>이 영어, 프랑스어, 스웨덴어, 독일어로 번역이 되어서 세계적으로 발표가 되었다면 우리는 정말 외국을 여행하는 동안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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