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길바닥에서 보여주는 엄마의 삶
시와 함께하는 세상-길바닥에서 보여주는 엄마의 삶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6.10 15:5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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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길바닥에서 보여주는 엄마의 삶

동태는 강자였다 콘크리트 바닥에 메다꽂아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동태를 다루려면 도끼 같은 칼이어야만 했다
아름드리나무 밑둥을 통째로 자른 도마여야 했다
실패하면 손가락 하나 정도는 각오해야 했다
얼음 배긴 것들은 힘이 세다
물렁물렁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한때 명태였을지라도,
몰려다니지 않으면 살지 못하던 겁쟁이였더라도
뜬 눈 감지 못하는 동태가 된 지금은
다르다
길바닥에 놓여진 어머니의 삶을
단속반원이 걷어차는 순간
그놈 머리통을 시원하게 후려갈긴 건
단연 동태였다.

(박상화, ‘동태’)

오늘 작품 소개는, 지금의 삶보다 훨씬 불편한 생활을 하던 시절, 아버지가 미처 가장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 있었고 가정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억척같았던 경우가 있었던 시절의 엄마 이야기이다. 가족의 생계가 바로 어깨 위에 걸쳐 있었던 지금은 할머니가 되어버린 엄마의 삶과 애환을 소개할까 한다.

바다에서 유영할 때면 연약한 명태이지만, 덕장에서 한겨울을 보낸 동태는 그야말로 단단하기 그지없다. 동그랗게 뜬 눈은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라 하더라도 육신이 얼어붙어 얼음장이 된 동태의 눈을 감기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통시장 어물전에 가면 커다란 나무 둥치를 잘라서 도마로 삼고 있으니, 그 억센 놈은 그 위에서 두툼한 칼로 힘껏 내리쳐야 잘린다. 시인의 말처럼 얼음 배긴 것들은 힘이 세기 때문이요, 자칫 손놀림을 잘못하면 손가락은 하나쯤은 금방 잘려 나간다.

시인은 명태가 눈을 감지 못하는 동태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에 방점을 두고 있다. 왜 동태는 아무리 힘센 장사가 와서 눈을 감겨도 감기지 못하는 것일까. 흔히 명태는 눈까풀이 없어서 눈을 감지 못한다고 쉽게 속단을 해버릴 수도 있지만 그건 속인들의 생각이고, 시인은 명태의 처지에서 생각해 볼 때, 결정적으로 억센 생의 가운데에서는 쉽게 눈을 감고 싶어도 감을 수없는 처지에서는 그 어떤 장사가 와도 얼음장 같은 동태의 감정을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거친 삶의 애환은 ‘콘크리트 바닥에 메다꽂아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라고 여기는 것이다.

또한, 그런 명태를 자를 수 있는 사람은 힘센 장사가 아니라, 바로 엄마의 팔뚝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힘센 장사라도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일 곧, 눈조차 감기지 못하는 동태를 억센 칼로 힘껏 내리쳐 동태의 몸을 동강을 낼 수 있는 엄마의 힘이다. 그것은 삶의 저변에서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한 엄마의 처절한 마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엄마의 힘이 동태의 단단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하는 명제가 그렇게 증명되는 것이다. 또한, 엄마에 있어서 동태의 존재는 가끔 노점이 금지된 곳에서 생선을 팔다가 단속 나온 단속반원들이 왔을 때, 그리하여 미처 그 현장을 피하지 못했을 때, 그리하여 그 단속반원들로부터 난전의 생선 함지박을 압수당하기라도 할 때, 그리하여, 마치 고양이를 피하다 궁지에 몰린 생쥐의 입장처럼 되었을 적에는 분연히 그 단속반원들을 무시무시하게 센 힘으로 머리통을 후려갈기던 연장(?)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니, 시인은 이런 것들이야말로 ‘과거 길바닥에서 보여주었던 우리네 엄마의 삶’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엄마는 원래 바닷속에서 이리저리 유영하던 명태처럼 겁이 많은 여리디 여린 여자였지만, 우리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여자가 아닌 엄마의 팔뚝은 아무리 얼음장 같은 동태라도 엄마라는 힘으로 쉽게 공략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 엄마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라도 살아가고 있다. 잊지 마시라 지금의 우리가 있었던 것은 과거 우리 엄마의 삶과 저력 때문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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