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곧, 누굴 만나러 갈 모양이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곧, 누굴 만나러 갈 모양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7.15 15:1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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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곧, 누굴 만나러 갈 모양이다

호탄동 한 뼘의 내 꽃밭
고양이 오롯이 똥을 눈다
고약한 냄새 뒷발로 퍽퍽 흙을 파서
나를 노려본다

흙덩이 하나 던져본다

금송화 촉 오르는 것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내 즐거움을
흙덩이 하나 던져본다

한두 발 옮긴 고양이
편안히 앉아
앞발로 침을 발라 얼굴을 닦고
뒷발로 몲을 핥고 닦는다

곧, 누굴 만나러 갈 모양이다

(조향옥, ‘오후의 그루밍’)

시인은 우리 진주 출신으로 지금은 독서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외출은 자주 하지 못하는 편이다. 기껏해야 집주변을 산책하는 정도 그리고 집 주변에는 약간의 작은 공터가 버려져 있어서 시인은 꽃을 심고 매일 주변을 산책하거나 얼마나 자랐나, 얼마나 예뻐졌나를 살피는 재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야생고양이 한 마리가 그 꽃밭에다 똥을 누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눈 똥을 뒷발로 흙으로 덮으면서 시인을 노려본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적반하장이라고 하는가? 이 사건에는 몇 가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첫째, 야생고양이가 시인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사실이며, 둘째, 고양이는 오히려 자신의 영역에 이방인이 침범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사유지에 침입자를 목격한 두 주체는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사람의 처지에서는 완전범죄를 시도하는 장면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고양이의 처지에서는 오히려 제 영역의 표시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입장은 자신이 개척한 꽃밭에 생명력이 길고 향기가 진한 금잔화(금송화)를 심어두고 애지중지하고 있으므로 흙덩이 하나로 물러나라고 경고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고양이는 제 뜻을 굽히지 않고 시인을 노려봄으로써 영역에 대한 집착으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둘은 곧 화해를 하게 된다. 이미 둘은 같은 영역을 두고 있지만, 각자의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즉 시인이 애지중지하는 것에 대해서 고양이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시인 또한 고양이의 응가는 꽃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했을 뿐 아니라, 그 행위가 단순히 범죄의 흔적을 은폐의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생고양이는 떠돌아다니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시인과 쉽게 휴전의 사인이 형성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발로 침을 발라 얼굴을 닦는다는 것과 뒷발로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냄으로써 외출을 하겠다는 논리 즉, 고양이는 멀리 떠나겠다는 뜻으로 고양이 역시 시인에게 화해를 요청하는 것이다.

화창하고 평화로워서 싸울 이유가 없는 날이다. 싱겁게 둘의 긴장이 사라질 충분한 이유가 있는 날이다. 고양이의 그루밍(꽃단장)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다. 어떻게 보면 고양이의 처지에서 본다면 이렇게 좋은 날 한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시간 낭비이며 여기저기로 이 아름다운 곳을 산책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굳이 당신과의 전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고양이에 비해 시인의 상황이 더 열악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시인은 “곧, 누구를 만나러 갈 모양이다”라고 하면서 화해를 받아들인 것이다.

시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다. 짧은 몇 줄의 글귀로 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며 마음과 마음을 통해 사람의 정서를 순화시켜주는 존재인 것이다. 서로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할 줄 알고 한발 물러서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가 너그러움을 발견하도록 해 주는 것이 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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