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허물을 벗지 못하는 사람이
시와 함께하는 세상-허물을 벗지 못하는 사람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8.26 15:5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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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허물을 벗지 못하는 사람이

내가 어렸을 때는
들에 나가 놀다 뱀 허물을 보고
뱀이 죽어서 남긴 흔적이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지
뱀은 허물을 벗으며 성장한다는 것을
한 해에 두세 번 허물 벗는 뱀도 있다는 것을

상처 난 뱀은 허물을 벗지 못한다는 것도
허물을 벗지 못해
몸이 딱딱하게 굳어 죽어간다는 것을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보았지
자기 허물에 갇혀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상처가 있어
어른이 되어도 허물을 벗지 못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을

(공광규, ‘허물’)

공광규 시인의 <허물>은 요즘 세태에서 여러모로 우리를 뒤돌아보게 하는 시인 것 같다. 뱀은 원초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원초적인 죄를 짓고 태어난 존재다. 일찍이 프랑스의 시인 쥘 르나르(Jules Renard)는 ‘뱀, 너무 길다.(Snake too long)’라는 짧은 시를 지었는데, 기독교적 관점에서 뱀은 원죄의 주범으로 ‘죄의 역사는 오래(길다)되었다’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시인은 의도에 맞게 해석될지 모르겠지만, 본고에서는 쥘 르나르의 관점에서 해석해보겠다.

뱀이 허물을 벗었다는 것을 죽음의 전 단계로 이해한 어린 시절 시인의 생각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성장통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 때쯤이면 당연히 학창 시절이 지나야 한다. 그런데 그 허물을 벗지 못하면 죽어가는 것이 필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허물을 벗도록 지원해야 한다.

허물은 사전적 의미로 잘못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어린 시절의 습관을 어른이 되어서도 고치지 못한다면 신체적으로는 변화가 왔을지 모르나 정신 연령이 따라 주지 못하면 사회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이 경우 교육을 통해 정신적인 변혁이 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따라서 공자의 말처럼 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잘못을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過則勿憚改) 할 것이니, 이러한 이 행위가 성장통이 아닐까. 그리고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시인의 말처럼 두 번 세 번의 성장통을 겪기도 해야 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주변에서도 네 내 자식 없이 올바른 성장통, 편리 상 교육이라는 말과 동일시 할 때, 훈육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는 남의 자식을 훈육하게 되면, ‘당신이나 똑바로 사세요.’라며 핀잔을 들을 수도 있으니, 참으로 처신기 어려운 세상이다. 시인은 이 점을 두고 /어른이 되어도 허물을 벗지 못하는 사람이/내 곁에 있다는 것을/이라며 안타까워하고 있으니 충분히 공감된다. 그리고 자기 허물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중에는 의외로 교육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상처가 난 뱀은 허물을 벗지 못하고 결국 딱딱하게 자신이 죽는다. 자신의 잘못을 고쳐가지 못한다면 그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자신이 파놓은 우리에 스스로 갇힐 수 있으니 얼마나 딱한 일인가. 또한, 법이라는 울타리를 교묘히 피하거나 이용하여 자신의 허물을 합리화 시키는 데만 골몰하는 사람들 또한 언젠가 된서리가 있을 것이다. 폴 발레리 (Paul Valéry)가 ‘작가가 작품을 제작했지만,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해석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공광규 시인의 <허물>이라는 작품적 위치와 뱀과 허물이라는 단어를 동원한 점은 무척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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