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유령들에게 수업을 한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유령들에게 수업을 한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10.07 15:08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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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유령들에게 수업을 한다

나는 유령학교에 근무한다
이 동네에선 유령된 지 10년 지나면 자동으로 제도권 유령이 된다.
나는 신참 유령들에게 수업을 한다
우선 머리에 책을 올리고 발을 땅에 대지 않고 걷는 연습
말해봤자 아무도 듣지 않고 설 자리 누울 자리 없고
눈밭에 제 발자국이 남지 않아도 놀라지 않도록 공중에 떠서 잠드는 법을 연습시킨다(중략)

나도 모르지만 그냥 목청 터지는 데로 한다
시간공장 제조 망원경이나 현미경 착용법 유체 이탈법
잊혀진 영혼이 되거나 메아리가 돌아오지 않아도 서러워하지 않는 법
불을 확 질러버렸으면 하고 생각만 하는 법
폭죽이 밤하늘에 떠 있는 그 순간만큼 환하게 당신에게 창궐하는 법
은 교과서를 참고하세요, 그렇지만 교과서는 짓지

노래 속에 숨어 들어가 흐느끼는 법
흐느낌 속에 들어가 숨을 참는 법
흐르는 사람들과 함께 흐르다가 나무처럼 하늘로 흑흑 벅차오르는 법
금관에서 퍼져나가는 모습의 항법에 있어서
내 몸의 테두리를 지우고 형용사 되는 법
그리하여 나날이 엷어지는 법(하략)
(김혜순, ‘유령학교’)

시가 너무 길어서 전문을 모두 실을 수가 없어서 시인의 의도가 가장 많이 담겨 있는 부분만 올려보았다. 특히 교단생활을 한 지도 수십 년이 된 필자로서 많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서 여러 번 읽어보았다. 시인은 유령학교에 근무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김혜순 시인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 선생이다. 그럼 도대체 유령은 무엇을 메타포로 하고 있을까. 유령이라면 무섭다는 이미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궁금해진다. 또한, 10년이 지나면 제도권 유령이 된단다. 그렇다면 제도권 유령과 비제도권 유령이 따로 있다(?) 이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면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유령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무서운 유령이 아니다. 당연히 비유적인 시어이다.

요즘 학교 풍토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수업 시간이 시작되거나 끝나는 시간이 분명히 정해져 있지만, 밖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들어오거나 수업 중에 옆 친구와 장난을 하거나 등등, 때에 따라서는 선생님 수업을 한 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러버리는 때도 있다. 공부하라고 하면 앞으로는 공부를 안 해도 우리나라의 복지혜택으로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 때문이란다. 그런 학생들에게 꾸지람을 해봐도 헛일이다. 더더구나 체벌이나 심한 꾸중은 학생 인권 모독이란다. 최근 모 신문에서 어느 교사의 증언이 있었다. 학생들의 성적분포가 중간이 제일 많고 상. 하위는 적어야 하는 이른바 다이아몬드형의 성적이 이상적인 구도인데, 지금은 그 구조가 삼각형 모양으로 변하고 있단다. 그러니까, 상위권은 당연히 적고 중위권 학생들도 확 줄어 하위권으로 몰리고 있다는 증언이다. 학교 현장에서 중위권이 사라지는 건 사회에서 중산층이 무너지는 것만큼 타격이 크다. 보통 학교 수업은 중위권을 중심에 놓고 위아래를 함께 아우르는 형태로 진행된다. 중간층이 사라지면 수업 방향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초중고 모두가 그렇단다. 그것은 이 사회의 구조가 상류층이 적고, 중류층이 많아지면서 하류층은 더더욱 많아서 경제구조가 무너지듯, 학교 성적구조도 그런 모양으로 진행을 하게 되면 교육이 많은 균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유령학교의 유령은 존재의 취급을 전혀 하지 않는 교실의 풍토를 말하는 것 같다. 선생은 떠들어라, 우리는(학생) 우리식으로 살련다 하는 이른바 유령 취급을 당하는 선생을 말하는 것이다. 사정은 신참 유령(신입생)들에게도 예외가 없다. 아무리 설명을 해봤자 듣는 학생이 없다, 오히려 수업 중에 딴생각만 하여(유체 이탈법) 영혼이 없거나 질문에 대한 답변(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도 없다.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불을 확 질러버렸으면’하는 생각까지 날까.

누가 우리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한 나라의 과거를 알려면 박물관으로 가고 현재를 알려면 시장으로 갈 것이며, 미래를 알려면 학교로 가보라’는 경구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울고 싶은 감정을 참는 법, 평소 생활을 하다가도 확 솟아오르는 화, 그리고 화가 사용하는 육두문자(형용사)를 지우는 법, 마음을 비우는 법(나날이 엷어지는 법)을 통해 날마다 마음을 비우고 수도승이 되어가야 하는 것이 오늘날의 학교 선생의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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