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여기는 발견되지 않은 유적이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여기는 발견되지 않은 유적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4.28 15:5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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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여기는 발견되지 않은 유적이다

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태동을 알아채는 침묵 이전의 기억 밑으로 밑으로, 웅크리고 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재생에 몰두한다 어느 애도가 부재를 지나 탯줄로 돌아올 때까지, 타자의 몸속을 오가는 이 반복은 고고학에 가깝다 생환의 뒷면은 그저 칠흑 덩어리일까, 벽과 벽 사이 미세한 빗살로 존재할 것 같은 한숨 이 어둠 안쪽 냉기를 만진다. 사금파리 녹여 옹기 만들 듯 이 슬픔을 별자리로 완성케 하는 일 아슴푸레 떨어지는 눈물도 통로가 될까 북녘으로 넘어가는 해거름이 창문 안으로 울컥, 쏟아져 내린다 살갗에 도착한 바람은 몇 만 년 전 말라버린 강의 퇴적 불을 켜지 않아도 여기는 발견되지 않은 유적이다. 잊기 위해 다시, 죽은 자의 생애를 읊조려 본다. 그래 다시, 귀를 웅크리지 태아처럼, 화석이 되어가는 기분이야 떠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방 안이 점점 어두워진다.

(박소미, ‘고독사가 고독에게’)

올해에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당선된 작품으로 이 시를 읽어보노라면, 문득 월명사의 제망매가(祭亡妹歌)가 생각난다. 삶과 죽음의 근원이 무(無)라고 할 때,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생은 커다란 윤회의 구도에서 볼 때, 자궁으로 돌아가는 것이거나(죽음)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재생에 몰두하는(환생) 영혼이 타자의 몸속을 오가는 반복은(윤회) 고래로부터 믿어온 신앙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월명사가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였듯, 일면식 없는 함께 살아왔던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지켜보는 이 없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파트 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그 이웃도 모르는 사이에 고독사를 당하게 된 사연이 어쩌면 삶과 죽음의 연속적인 입장에서 환생이라는 논리로 미화하고 위로한다고 하지만, 죽음 자체는 우리가 슬프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 죽음이라는 것이 고분 속에서 벽을 사이에 두고 죽은 왕의 곁에서 순장 당한 사람들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맞이하였다고 하더라도 임종 직전에 함께 한 사람들이 있어서 많이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지켜보는 이 없이 아파트에서 미라가 되도록 방치된 채 생을 마감한 경우를 얼마나 공포심이 더했을까.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무리 몸은 죽고 영혼은 승천(슬픔을 별자리로 완성케 하는 일)한다고 하지만, 정말 영혼이 존재한다면 자신의 육신이 태아처럼 웅크린 채 화석으로 변해가는 것을 바라볼 사자는 저승의 문턱에서 몇 번이나 회한으로 뒤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는 이가 없는 가운데 생전에 살았던 아파트만 오래도록 어둠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현대판 전설 같은 이 고독사…

일인가구가 늘어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시대 때보다 더 두렵게 여기는 세상이 되었다. 오랫동안 죽음으로 방치되도록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 세상, 이러한 세상이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문명의 세상이고 아름다운 세상일까? 시인은 이러한 현실 앞에 나와 당신과 그리고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월명사 또한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삶과 죽음의 길이 지근의 차이라고는 하지만, 오래도록 공포 속에서 외롭게 다시 자궁 속으로 돌아간 외로운 영혼을 위해 늦었지만 명복을 비는 것 외 할 수 없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박소미 시인은 비록 올해에 등단했지만, 삶의 연륜이 묻어 있는 중년 여성이다. 그리고 이 시는 올해 국제신문에 신춘문예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훌륭한 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멋진 시라고 생각한다. 이런 정도의 시를 쓴 시인을 존경한다. 중년의 여성답게 이러한 시를 쓰기에, 충분한 내공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오래도록 시를 쓰고자 자신의 재능을 긴 시간 동안 갈무리해 왔지 않았나를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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