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괄호 안에서 튀어나오고 싶다던
시와 함께하는 세상-괄호 안에서 튀어나오고 싶다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6.21 16:1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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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괄호 안에서 튀어나오고 싶다던

오해로 가득한 골목 끝에서
비문처럼 새들이 날아간다.
새들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나는 어둠처럼 번진다

제 눈을 수없이 의심하며
골목에서 말끝을 흐리는 바람의 표정들

골목의 입장에서 보면
귀먹은 고양이의 울음처럼 모호하고
남의 입장은
골목의 논리를 받아 적을 수 없는 논리처럼
이해할 수 없다
때로는 우연을 가장하여 다른 세계가 쏟아진다
골목의 경계가 희미해지도록

골목의 안쪽에서
진심처럼 나는 어둡다
괄호 안에서 튀어나오고 싶다던

(최서진의 ‘지워진 문장들’)

표현 방법이 다소 재미있어 눈길이 가는 시다. 시의 제목이 ‘지워진 문장들’이라고 하지만 시를 전체적으로 한번 읽어보면 ‘지우고 싶은 문장’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보았다.

작은 오해에서 비롯된 비약된 큰 이야깃거리에 관한 이야기다. 동네(골목)에서 발생한 좋지 못한 소문에서 발생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당연히 그 소문의 대상은 ‘나’이겠지만…, 소문이라는 것은 원래 쉽게 과장되고 신속하게 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사소한 일이었겠지만, 그 사소함이 나에게는 매우 크게 우려스러운 일(어둠)이 되고 만다. 그 우려스러움은 마침내 주변 사람들 사이에는 바람처럼 급속도로 퍼져나가게 되고 그 때문에 나는 현재 상황에 대해서 나의 눈, 귀를 의심하게 될 정도로 현실에 대한 심각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전반부의 이야기다.

주변 사람들의 논리에서 생각해 보면 /귀먹은 고양이의 울음처럼 모호하고/의 표현처럼 전후의 사실을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모호한 상태기 때문에 나의 변명이 먹혀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혹은 변명의 과정에서 또 다른 오해를 불러들여 더더욱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 복잡한 논리로 이어진 상황이다. 그래서 떠돌고 있는 소문이라는 것에 대해서 석연하지 못한 마음이 생기게 되면서 /괄호 안에서 튀어나오고 싶다던/처럼, 이 상황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시는 시어의 선택에서 ‘비문’이나 ‘귀먹은 고양’이 등에서 중의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소문이 날아다닌다’라는 의미와 ‘논리성이 없는 말’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비문’이 가진 중의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진심을 듣지 않는다’라는 의미와 함께 ‘나 역시 상대방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라는 상황을 동시에 표현하는 서로 일방적인 상황을 ‘귀먹은 고양이’가 주는 요소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전반적인 내용으로 보면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시의 내용에서처럼 누구나 한 번씩은 겪어 봤을 법한 생활에서 오는 갈등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논제는 시보다는 수필과 같은 장르에서 다룬다면 더욱 어울릴 법한 내용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러한 복잡한 구도를 짧은 시에 적용함으로써 쉽게 시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 번 눈길이 가는 작품이다.

그렇게 볼 때, 표현상의 기교도 기교지만, 글의 소재가 산문에서 더 잘 어울린다거나, 시의 소재로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해소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훌륭한 목수는 연장을 나무라지 않듯 글을 쓰는 사람도 소재를 선택으로 호불호를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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