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아, 사람 물고기들
시와 함께하는 세상-아, 사람 물고기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6.28 16:0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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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아, 사람 물고기들


저 물고기의 내장은 소리다
매일 제 내장을 허공에 풀어놓는 목어(木魚)
장삼 소맷바람을 타고 날아다니고 있다
가시나무 등에 꽂고
해탈의 물살에 붉은 피 흘리고 있다

나무의 몸과 바꾼 비리한 업(業)은
오래전에 물길에 들었다
하루에 두 번씩 산란에 들고
속 빈 심사로 천장에 매달려
매를 맞는 매 공양에 쩍 벌어진 입 다물지도 못한다
두 눈 부릅뜨고 타악기(打樂器)의 생을 잠시 지나간다
살점이야 그렇다지만
반질반질한 매의 흔적에 악기를 모셔놓고 있다

산문(山門)에 날리는 물고기알들
우매한 귀로 모여든다
지금은 텅 빈 공양을 하고 목질 비늘과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갖고 제자리 헤엄치는 목어

저녁 어스름
갓 부화한 치어 떼들이 내 몸을 향해 몰려들고 있다
내 몸이 물살이라니
환청으로 오래 자라날 목어의 치어들이 바글거린다
업장 소멸 뒤뚱거리는 세상 물속
물고기 아, 사람 물고기들

(김기리의 ‘목어(木魚)’)

옛날 어느 고승의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계율에 어긋나게 살다가 죽은 수행자가 있었다. 이 제자는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게 되었는데, 등 위에 큰 나무가 자라서 고통스러워했다. 하루는 고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자 그 물고기가 배를 막고 눈물을 흘렸다. 이에 고승은 물고기의 전생을 살펴보니 죽은 제자가 물고기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가엾게 여겨 수륙제로 물고기의 몸에서 벗도록 해 주었다. 그날 밤, 꿈에 그 제자가 나타나 말하기를 “스승님, 제 등에 있던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법당 옆에 걸어두고 때때로 쳐서 수행자들이 그 소리를 들으며 더욱 수행하게 하십시오”해서 만든 것이 목어의 설화다. 그리고 그 목어의 축소판이 목탁이다.

시에서 말하는 허공이란 하늘의 의미도 있겠지만, 무(無)의 세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 실제 목어의 내장은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목어의 내장은 어디에 있을까. 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목어를 두드리는 채를 말한다. /하루에 두 번씩 산란에 들고/라는 말은 사찰에서는 새벽과 저녁 두 번의 예불(禮佛)을 드린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그리고 예불을 들일 때는 각기 물속 수중생물과 육지의 축생과 허공의 조류 그리고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들의 구제를 위해서 두드린다고 한다.

그래서 시인이 말하는 목어의 내장은 목어를 두드리는 채를 말하고 채는 중생을 구제하는 법어(法語)가 되는 것이니, 목어의 내장은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시인은 목어 소리를 물고기의 알에 비유한 것이다. 목어의 전설에 따라 세상에 흩어져 있는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 목어의 알(법문)을 뿌림으로써 그들을 온갖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목어는 언제나 산문(山門)에 매달아두고 아침저녁으로 세상 곳곳의 번뇌를 씻어내고자 해서, /저녁 어스름/ 갓 부화한 치어 떼들이 내 몸을 향해 몰려들고 있다/ 내 몸이 물살이라니/처럼 목어의 소리로 번뇌를 씻고 속된 번뇌로부터 수양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살아오면서 뜻하지 않은 잘못(죄)이 있었다면 그때그때, 참회를 하려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치어(법어) 떼가 바글거리는 환청이 귀에 따라다닌다’라는 말은 시인이 반성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향해 던지는 시인의 겸손한 가르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말은 곧 시인이 필자를 향해 던지는 법문인 것 같아서 가슴이 뜨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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