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이상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이상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7.19 16:2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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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이상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너는 달콤한 혓바닥을 날름대며
사랑이라는 상자를 내게 건넨다
내게 온 상자는 너를 닮은 뱀이 된다
상자 속 검은 아가리가 통째로 나를 삼킨다
나는 뱀의 허물을 뒤집어쓴 기인 몸뚱이
나무를 휘감고 탈피를 꿈꾼다
나는 간악한 혓바닥을 날름대며
신의 눈, 붉은 사과를 네게 건넨다
너는 사과를 베어 먹은 알몸의 부끄러움
자궁 속으로 숨는다, 함께 부풀어 오른다
나는 탈피하듯 너를 낳는다
너는 상자(箱子)로 태어난다
너를 열자 해골의 갈비뼈 하나가 튀어 나오고
상자는 관(棺)처럼 썩었다
 
이상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안현미의 ‘이상’)
 
이상은 소설가이면서 ‘오감도’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난해한 시를 쓴 시인이기도 하다. 이번 시는 그의 위인성과 업적을 소개하고 있다. 시 첫머리에 상자가 등장하는데 이름이 사랑이라는 뱀과 등장한다. 뱀과 상자를 연상해보면 이브와 판도라가 연상된다. 이브를 유혹한 뱀과 하느님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그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어버린 이브의 실수로 원죄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엄명으로 절대로 열지 못하게 하였으나 끝내 상자를 열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고 그 순간 세상의 온갖 죄악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이브의 이야기든 판도라의 이야기든 이들은 같은 맥락이다.

이상을 원죄와 결부시킨 것은 판도라 상자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던 난해시를 불러낸 원흉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상(箱)은 이상의 이름과 상자의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중의적인 표현이니 이상은 곧 난해시가 들어 있는 판도라요 상자가 곧 이상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뱀은 사악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지만, 신화에서는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의학에서는 허물을 벗고 새로 태어남을 반복한다는 의미에서 재생과 치유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인은 /나는 뱀의 허물을 뒤집어쓴 기인 몸뚱이/ 나무를 휘감고 탈피를 꿈꾼다/라고 하여 뱀을 통해 재생적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여기서는 ‘기인 몸뚱이’는 뱀이요, 재생된 새로운 형태의 시(난해 시)를 의미한다. 그래서 /신의 눈, 붉은 사과를 네게 건넨다/ 너는 사과를 베어 먹은 알몸의 부끄러움/ 자궁 속으로 숨는다, 함께 부풀어 오른다/고 하여 사과(난해 시)를 권하고 있다.

즉, 이브가 사과를 먹어서 원죄를 받기도 하겠지만, 출산의 고통과 함께 자손(난해 시)이라는 아름다운 선물도 생겨났듯, 힘들지만(원죄) 시인의 아름다운 자손(난해시)을 함께 창작해보자는 의미다. 달콤한 맛이 있었다면 당연히 출산의 고통도 따라야 하는 것이니 이른바 오는 정 가는 정이다.

그런데 너(난해한 시)는 이상이라는 상자에서 태어나지만, 썩은 해골이 되어 나왔고 그나마 상자는 썩은 관(棺)이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이상이라는 난해시가 상자에서 탈출한 이래로 지금까지 더 이상의 변화가 없어서 거의 진부해졌다는 뜻이다. 즉, 시인은 이상의 난해한 시가 탄생한 지 백 년이 지나고 있지만, 한 번도 이상의 수준을 넘은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이상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상한 일(난해시)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로 마무리하는 것인데, 일종의 현실적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이리라.

이번 시는 중의법(重意法)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 되기 때문에 다소 난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에서 전하고자 하는 의미 또한 다소 엄중함이 있어서 시에 관한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꼭 읽어 봤으면 해서 소개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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