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생 닭발 오독오독 씹으며
시와 함께하는 세상-생 닭발 오독오독 씹으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09 15:3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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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생 닭발 오독오독 씹으며


집개가
첫 암내를 질질 흘리며 묻히고 다니자
뒤란 부엌 마루 밑으로

가늘고 긴
납작하고 여러 마디
마디마디 한 쌍씩 다리 달린 절지들이 징글징글 모여들었다

핏기 맡고 온다는

그걸 쪼아 먹은 장닭 목이 단칼에 잘려 나가고

피 튀겨
질근 감던 눈두덩
우물물에 씻던 가시 어머니의 방심을 틈타 줄달음치는
머리 없는 목구멍

생피 쏟아대며 활개 친 마당 둘레에는
볏 모양의 붉기가 서려 오돌토돌 닭살이 돋았다

난데없이 집행관 차압 딱지 붙이듯 왜소해진 생활에 잔뜩 주근깨 낀 관자놀이 핏대를 올려세우며 토라진 여자
데리러 가서는

복숭아 짓이기듯 다진,
막 소금 찍어 입에 넣어준 생 닭발 오독오독 씹으며

흠칫 목덜미 발목이 시큰거려 혼났다

(조성국의 ‘맨드라미’)

생태계의 먹이 사슬이 읽어지면서도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 나는 작품이다. 암캐가 흘린 월사의 흔적을 지네가 음미하고 그 지네를 수탉이 쪼아 먹게 되는데, 지네를 먹은 닭은 보양이 된다는 속설로 시인의 장모님은 그 닭을 잡아서 요리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마치 생태계의 진행 과정을 그대로 파노라마(panorama)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이 보이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부부간의 애정을 다루는 방편으로 재탄생하니 이러한 상황은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난데없이 집행관 차압 딱지 붙이듯 왜소해진 생활에 잔뜩 주근깨 낀 관자놀이 핏대를 올려세우며 토라진 여자/라는 표현으로 볼 때, 시인은 사업을 하다 잘못되었거나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을 위해 은행 보증으로 많은 곤란을 당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내는 그 일로 시인에게 매우 심하게 화가 난 상황으로 연상된다. 그래서 닭발을 굵은 소금에 찍어서 미안한 마음과 함께 부부간의 애정을 표현하고자 한 의지를 보여주는 상황이다. 남편의 애정 공세에 뾰로통했던 아내도 내심 마음은 다소 풀렸으리라. /흠칫 목덜미 발목이 시큰거려 혼났다/라는 표현에는 정작 아내를 위로할 방법이 이렇게 소박한 방법밖에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리라.

제목이 맨드라미인데 생뚱맞게 온통 수탉 이야기뿐인 것은 무슨 뜻일까? 닭은 원래 머리 꼭대기에 붉은 볏이 있는데 특히 수탉에게 많다. 이러한 닭의 볏은 맨드라미의 꽃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맨드라미꽃을 한자로 ‘계관화(鷄冠花)’로 표기한다. 그렇게 되면 맨드라미를 닭 볏으로 메타포(metaphor)화 한 셈이다. 이렇게 되면 실제 닭은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날 맨드라미를 보면서 예전에 장모님께서 요리해 주신 닭요리가 생각났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조성국의 시집을 읽어 보면 우리의 토속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번 시에도 예외 없이 멋진 우리 말을 사용하고 있으니 ‘가시 어머니’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가시란 예전부터 사용되는 ‘아내’의 순우리말이다. 그러니까, 가시 어머니는 아내의 어머니인 장모님이 되는 셈이다.

시인의 시집 ‘해낙낙’에 소개된 이번 시는 시집 제목 역시 순우리말로 해낙낙의 사전적 의미로 ‘흐뭇하고 만족한 느낌이 있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잊혀가던 우리의 토속어를 동원해서 쓴 시를 감상하면서 우리 시단에도 아름다운 고유어가 시어에 많이 사용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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