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아사 직전의 사랑
시와 함께하는 세상-아사 직전의 사랑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8.16 17:1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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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아사 직전의 사랑

굶주린 천사가 속삭인다
꽉 잡아줄게
숨이 태어난 자리에서 피어나는 허기를, 사랑을
더는 어찌할 수 없는 순응
전율하며 각자 다른 꽃으로 핀다
헤어진 후 갈래꽃보다 가벼워진 입술
그는 숨을 고르고 그녀는 그네를 탄다
한번은 그녀 또 한번은 그가 굶주린 천사가 된다
서로의 붉은 비밀이 사라지면 그네는 멈춘다
얼마나 끝내고 싶었을까,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아사 직전의 사랑!

(문정영의 ‘숨그네’)

숨그네는 독일의 여류소설가 헤르타 뮐러(Herta Müller)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제목으로, ‘숨그네(Atemschaukel)’는 숨(atem)과 그네(schaukel)의 합성어로 작가가 만든 조어(造語)다. 사람의 숨결이 죽음과 삶 사이에서 그네처럼 흔들리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삶과 죽음이 그네가 흔들리는 순간에 있는 가벼운 것이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소설 배경은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승전국이 된 소련이 독일로 진입한 데서부터 비롯된다.

주인공인 레오가 독일계 시민이라는 이유로 소련 군부에 의해 1945년 1월 러시아의 강제수용소에 감금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5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 후유증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아서 불행한 삶을 마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형벌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식욕과 성욕에 대한 자율성을 박탈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모르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했던 것처럼 전승국 소련도 독일군 포로들에게 같은 방법으로 고통을 주었다. 수용된 사람들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지만, 허기를 모면하기 위한 고통과 특히 여성들은 교도관으로부터 의도하지 않는 성관계까지 당하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이들에게 이런 모든 사실을 합성한 말로 ‘굶주린 천사’라 불렸다. 시인은 /전율하며 각자 다른 꽃으로 핀다/라면서 살아남기 위해 변해가는 인간의 천태만상을 /헤어진 후 갈래꽃보다 가벼워진 입술/로 묘사하고 있다. 즉 굶주림 앞에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자행되는 온갖 고통과 문란해지는 성관계를 통해 ‘숨그네(Atemschaukel)’의 위력을 목격한다는 것이다.

과거 어떤 역사적 사실을 시의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시를 서사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시인은 억제된 본능 앞에서 인간의 상식에서 예측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종종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그렇게 집단이 다른 집단을 향해 자행할 수 있는 만행을 고발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 고발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절실함을 시인은 ‘굶주린 천사의 아사 직전의 사랑’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비교적 짧은 아포리즘(aphorism) 형식의 시지만 이 짧음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여 감성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 이러한 사실성에 입각한 시를 쓸 때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상식을 동원해서 작가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최대한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독자는 그런 시를 감상할 때는 건성으로 읽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시인의 간절한 메시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법의 하나로 시의 사상적 배경이 될 수 있는 사실을 찾아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시의 마무리 부분에 /아사 직전의 사랑/이라는 말을 통해 시인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간절한 메타포(metaphor)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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