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무심한 날들을 쪼고 있는
시와 함께하는 세상-무심한 날들을 쪼고 있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09.13 14:2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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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무심한 날들을 쪼고 있는

뻐꾸기 울면 퉁퉁 불은 젖으로 우는 여자, 그때 어느 집 대문 앞에 놓고 온, 사월인가 오월인가 대문으로부터 도망친 방향이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여자

사주에 나타나는 자식이 팔자에까지 따라오지 못한 여자, 이름도 성격도 모르는, 오다가다 비슷하게 닮은 얼굴 마주치면 목구멍 저쪽에서 뻐꾹뻐꾹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여자, 어쩌면 그리도 사주가 험한지 기둥과 기둥 사이 간격이 넓힐수록 액살로 북적이는 여자

둥지를 훔친 여자의 정곡엔 뱁새 부리 같은 짧고 묵묵한 날들이 콕콕콕 무심한 날들을 쪼고 있는, 사월인가 오월인가 그쯤에서 버리고 온 무수한 산울림에 오냐오냐 대답하는 여자

(이봄희의 ‘사월과 오월 사이’)

오랜만에 서정다운 서정시 한 편을 감상하는 것 같다. 이번 시는 시인의 이름과도 무척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시상 속의 배경을 생각하면서 시를 감상하는 동안 시인의 나이를 짐작해 보았는데,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봄희’라는 이름은 다소 젊은 층일 것으로 짐작되지만, 시를 서술해 나가는 방법론에서는 분명 중년에 들어섰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월과 오월 사이면 계절적으로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로 뻐꾹새가 등장하고 번식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뻐꾹새는 둥지를 짓지도 아니한다. 당연히 암수가 번갈아 알을 품지도 아니하며,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키우지도 아니한다. 다만, 뱁새, 개개비 등 다른 새의 둥우리에 몰래 알을 낳아서 그들에게 기르게 하는 얄미운 새다. 이를 조류생태학에서는 탁란(托卵)이라 부르는데 특이한 육아 생존전략이 아닐 수 없다.

한 여자가 있었다. 어떤 형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울 형편이 못 되어서 수년 전 이맘때, 뻐꾸기의 탁란처럼 어느 집 대문 앞에 두고 도망쳐왔다고 한다. 사주와 팔자에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운명이요, 가지더라도 키울 수 없다는 운명이란다. 그래서 시인은, 이 여인은 비슷하게 생긴 아이만 봐도 뻐꾸기처럼 울음을 터뜨릴 것이라는 운명의 여자라고 생각했다. 다소 뻐꾹새와는 다른 형편인 듯하지만, 자식을 키울 수 없다는 처지에서는 같다.

/어쩌면 그리도 사주(四柱)가 험한지 기둥과 기둥 사이 간격이 넓힐수록 액으로 북적이는 여자/처럼 사주의 ‘주’는 인간의 운명을 세우는 기둥이다. 기둥은 적당한 간격이 되어야 지붕이 안정적일 텐데 이 여자의 기둥은 간격이 너무 멀단다. 그래서 사는 것이 팍팍하고 어렵다는 것인데, 오죽했으면 자기 속으로 나은 자식까지 버렸겠는가. 그뿐 아니다. 그녀의 관상도 문제가 많다. /둥지를 훔친 여자의 정곡엔 뱁새 부리 같은 짧고 묵묵한 날들이 콕콕콕 무심한 날들을 쪼고 있는/이라 하여 집 한 칸 없이 남의 집에 기생해야 할 상(像)으로 이마나 얼굴 생김새가 너무 좁아서 ‘복’이라고는 없는 그야말로 박복(薄福)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과도 생이별할 관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운명을 진 여자이기 때문에 해마다 봄이 되면 어디선가 어린아이 울음소리만 들려도 이 여자는 스스로 위축되어 본능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여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오월이면 대개 생동이 감도는 계절이다. 무슨 연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상 속의 주인공을 생각하면 생동감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 같다. 이번 시를 감상하면서 마치 오래전 TV문학관의 한 편을 보는 듯했다. 오죽했으면 자식까지 버려야 할 형편일까마는 이번 시를 통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만큼 다양한 사연들이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많은 여운을 남기게 한다.

일반적으로 평소 뻐꾹새의 행위를 보면 얌체다는 생각이 들고 괘씸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묘하게도 시인은 이러한 상황을 오히려 동정심을 유발하게 하는 반전을 보인다. 이런 것을 두고 시인은 역시 언어의 연금술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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