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네 안의 열기로 키를 키워라
시와 함께하는 세상-네 안의 열기로 키를 키워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0.11 16:5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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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네 안의 열기로 키를 키워라
 
털어버리기 위해 물을 맞는가 저들은
퍼붓는 빗줄기 뒤집어쓴 처마 밑 개처럼
목덜미 저리 세게 흔들어대는가
푸르스름한 새벽부터 잦아드는 황혼까지
쏴아아에서 똑똑까지
세포 열어 기다렸음직도 한,
깔깔거리며 부비고 안겨오다
마침내 머쓱하게 발길 돌리는 물의 기억마저
애써 짜 말리는가
불인 듯 꺼버리는가
화살 빗발치는 적진 뚫고 떠온 물
군사들 앞에서 쏟아버린 알렉산더처럼 비장하게
내치고야 마는가 물 빠져나간 자리 컴컴한 적멸 화두로 붙안고
계곡에 담그고 싶어 우줄거리는 발가락은 타이르며
물음표처럼 큰 머리 꼿꼿이 치켜세운
파리한 은수자들 앞에 서면
네 안의 열기로 키를 키워라
검은 동굴 속 수런거리는 먼 조상들의 음성
 
(손진은의 ‘콩나물’)

콩나물의 내면을 가지고도 이렇게 긴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아시다시피, 콩나물은 수시로 물을 뒤집어씌워야 하고 뒤집어씌운 만큼 물이 콩나물 대가리라고 하는 부분, 사실은 잎새를 따라 아래쪽 뿌리로 흘러내린다. 그것을 의인화하여 ‘목덜미를 흔들어댄다고 했다.’ 아마 인위적으로 콩나물을 기르기 위해 물을 붓는 장면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리고 처음 바가지를 통해 ‘쏴아아’ 하고 쏟아지는 순간을 /깔깔거리며 부비고 안겨오다/라 하여 어린아이들의 물장난처럼 익살스럽다가 마지막 물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을 두고 /머쓱하게 발길 돌리는 물의 기억/이라 하여 물이 처음 쏟아질 때와 물방울이 마지막으로 흐를 때를 둔 물줄기의 흐름에 대한 과정도 무척 재미있게 비유하고 있다.

다음 이야기는 마치 주인공이 콩나물이 아닌 물인 것 같은 뉘앙스를 보인다. /화살 빗발치는 적진 뚫고 떠온 물/군사들 앞에서 쏟아버린 알렉산더처럼 비장하게/ 이 말은 콩나물 틈새를 뚫고 들어가는 물의 비장함을 소개함으로써 콩나물과 대립관계인 물 중에서 어느 것이 주인공인지 약간 헛갈린다. 그러니까 이 부분만 보면, 결국 콩나물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콩나물을 뚫고 들어오는 물을 제2의 주인공으로 삼은 것처럼 보이는데 어느 시점이 되어야 하는지 잠시 아리송해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다시 콩나물이 주인공이 되어 돌아온다. 물음표 모양의 콩나물이 계곡에 물을 담그고 싶은 발가락(뿌리)을 타이른다든지, 빽빽하게 자란 수많은 콩나물을 은수자(隱修者)에 비유한 것이라든지, 본래 콩나물은 시루에서 밀착된 상태로 자라면서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물과의 관계 설정과 함께 서로 간의 서사로 정리하고 있다는 형태의 의인화는 멋진 비유라 할 수 있다.

마치 고려시대 가전문학(假傳文學)의 한 장면을 읽는 듯하다. 콩나물이라는 작은 대상을 두고 이렇게 자세하게 시를 쓴다는 것은 대상을 오랫동안 관찰한 인내심(忍耐心)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시를 통해 콩나물이라는 내용도 내용이겠지만, 시인이란 어떤 눈을 가지고 사물을 관찰해야 하는지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사물을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 시인 자신이 콩나물이라는 입장이 되어보아야 한다는 가상 체험일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부분의 /네 안의 열기로 키를 키워라/라는 구절이 특별히 와닿는다. 물론 검은 동굴은 콩나물시루로 보면 될 것이다. 다만, 대상 설정 과정에서 콩나물과 물 사이에서 고정되지 못한 부분에서 다소 아쉬운 감이 있지만, 인상 깊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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