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너는 왜 자꾸 웃는 거니
시와 함께하는 세상-너는 왜 자꾸 웃는 거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0.18 16:05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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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너는 왜 자꾸 웃는 거니

팬티를 뒤집어 입고 출근한 날
너는 왜 자꾸 웃는 거니
공장장이 한 말이다
귤처럼 노란 웃음을 까서 뒤집으면 하얗게 들킬 것 같아
오늘은 애인이 없는 게 참 다행이고

너는 왜 자꾸 웃는 거니
공장장은 그렇게 말하지만 예쁜 팬티를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나는 팬티 같은 건 수북하게 쌓아놓고 오늘은 꽃무늬 내일은 표범무늬
어제는 나비를 거느리고 다녔다 결심을 유보하느라 계속해서 뻗어나가고 있는 넝쿨식물처럼

내가 딴생각에 빠지면
손목이 가느다란 것들은 믿을 수가 없어 공장장은 중얼거린다

나에겐 아직 애인이 없고
공장장과 함께 밥을 먹는다

팬티 속을 만지면 울어본 적 없는 울음을 설명할 수 없는 오후
번지듯 피어나는 꽃잎을 물고 나비는 날아가버리고

그걸 알아봐 준다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웃지 않고 어떻게 마주 앉을 수 있는 걸까

애인은 어떤 식으로 생기는 걸까

(임승유의 ‘계속 웃어라’)

최근 들어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많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심심찮게 들리는 사건 사고가 성과 관련된 부분이고, 피해자는 대부분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 문제를 이승유 시인은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어서 소개해 볼까 한다.

도입 부분에서부터 다소 도발적이다. “팬티를 뒤집어 입고 출근한 날 / 너는 왜 자꾸 웃는 거니” 이런 부분은 간밤의 숙취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 아니라면 외박을 한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공장장이 등장하고 애인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렇게 되면 둘 사이에 약간의 사연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더구나 귤처럼 노란 웃음(엘로우 카드가 연상되는)을 하얗게 들킬까 염려스러워하는 장면을 보면 상투적인 생각을 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뒤이어 “공장장은 그렇게 말하지만 예쁜 팬티를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라는 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아울러 “어제는 나비를 거느리고 다녔다 결심을 유보하느라 계속해서 뻗어나가고 있는 넝쿨식물처럼”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나비란 현실의 변화나 운명적인 짝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시상의 흐름으로 볼 때, 공장장은 자연스럽게 나를 변화 시켜줄 수 있는 존재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다음의 내용부터 다소 의아스럽게 한다. “내가 딴생각에 빠지면/ 손목이 가느다란 것들은 믿을 수가 없어 공장장은 중얼거린다” 내가 딴생각에 빠진다는 것은 공장장의 호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장장은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면서 손목이 가느다란 것(의식이 있는 여인)들을 믿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장장은 적극적인데 상대방인 나는 공장장이 원하는 만큼의 믿음을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정식 애인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장장과 함께 밥을 먹기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이라기보다는 무미건조함을 해소하기 위한 사이로 본다는 것이다. 즉,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일회성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울어본 적이 없는 울음이니 나비가 날아가 버렸다는 메타포(metaphor)가 등장한 것이리라. 그러니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사실을 당신(공장장)도 좀 알아차려달라'는 동정적인 말이거나 웃음(조소라고나 할까)을 던지기도 했던 것이리라.

마지막 결론이 대담하다. “애인은 어떤 식으로 생기는 걸까” 정말 마음을 줄 수 있는 애인이 등장한다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말인데,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생각은 페미니즘의 극치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이야기는 성인지가 남성 전용이라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여성 또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시인의 의지라면, 지나친 오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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