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어느 쪽이 회색빛에 가까울까
시와 함께하는 세상-어느 쪽이 회색빛에 가까울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0.25 16:2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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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어느 쪽이 회색빛에 가까울까
 
말라버린 웅덩이에 넣는 것은
세상의 바깥으로 잠시 물러서는 일
 
당겨지는 곳이 내 몸 어느 부분인지
손톱 밑 반달은 보이지 않는다
 
빈약한 핑계가 서러워 물이 고이기 전에 향기를 거둬두어야 해, 멍이 사라지는 것처럼 살속으로 스며들어야 해
 
갈라진 바닥이 궁금하여 실핏줄 깊숙이 손을 넣는 대신 사정거리 밖에서 서성인다
 
붉게 변하는 것은 토마토이거나, 서서히 붉어지는 뺨의 손자국이다
노을빛 어려있는 검붉은 하늘이
사라지고 있다
 
노랗게 잘린 바나나는 푸른색을 숨기고 있다
껍질의 표정을 살피며
껍질을 벗기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어서
귓속이 꽉 차는 속삭임으로 이명에 시달리는데
어떤 결말에도 머리카락은 젖었다
 
속아주는 것과 거짓말을 만들어 주는 것 중 어느 쪽이 회색빛에 가까울까
 
(송미선의 ‘리트머스’)
 
리트머스종이를 통해 인간의 심성을 말하는 점에 눈길이 간다. 주지하다시피 리트머스는 물질이 산성이냐 알칼리성이냐를 구별하는 도구이다. 어떤 물질에 리트머스종이를 삽입했을 때, 빨간색이 나타나면 산성이, 파란색이 나타나면 알칼리성이라는 이야기다. 회색이 나타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물질이 중성이라는 의미다. 장황한 이야기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리트머스와 색상의 변화 관계를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설명한 것이다.

“말라버린 웅덩이에 넣는다는 것은” 당연히 해당 물질의 성분을 확인하기 위해 리트머스 종이를 넣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또한, “손톱 밑 반달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리트머스가 물질에 반응하여 색상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정확한 성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리트머스를 대상 물질에 깊이 넣어서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로 “멍이 사라지는 것처럼 살속으로 스며들어야 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붉은 토마토나 심하게 뺨을 맞아서 붉어지는 노을빛은 당연히 물질이 산성이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노랗게 잘린 바나나는 푸른색을 숨기고 있다”는 당연히 미처 완전히 익지 못한 바나나를 미리 따야 소비자들에게 갈 즈음에는 노랗게 변하는 상술의 원리를 이용하여 알칼리성 물질을 소개하려는 것이리라.

다소 뜬금없다 싶은 것은 “귓속이 꽉 차는 속삭임으로 이명에 시달리는데”라고 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이해하자면 이 시의 속뜻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리트머스의 붉고 푸른 이야기는 결국 인간관계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인간관계에서 시비가 발생하면 누가 나의 우군인가 하는 논리로 첫 연의 “말라버린 웅덩이에 넣는 것은/세상의 바깥으로 잠시 물러서는 일”이라는 것은 단순한 리트머스의 성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와 시비에 휘말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비에 휘말린 상황에서 누군가가 자꾸만 험담한다는 것을 상상하여 ‘이명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말에도 머리카락이 젖는다”라는 말도 이명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말하는 것이리라.

앞서 언급했듯, 리트머스 현상에서 회색은 중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회색빛에 가깝다”라는 말은 누가 당면한 사건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래서 시란 묘한 것이다. 시 속에 숨어있는 메타포(metaphor)를 어떻게 찾아내는가와 그리고 그 메타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시를 감상하는 매력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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