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아담이 늑대의 탈을 썼나요
시와 함께하는 세상-아담이 늑대의 탈을 썼나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1.01 16:04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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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아담이 늑대의 탈을 썼나요

원죄는 이브가 아닐지 몰라요
당신은 아담의 몸속에 이미 원죄를 심어 놓았지요
당신이 해 놓은 장치, 당신의 마술로 아담의 숨은 다리가 쑥쑥 자랐어요

왜 이브의 몸속에 애꿎은 새끼집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걸까요
원죄 이전에 이브의 배속에 자궁이라는 게 있었나요
이브는 날개가 있었나요 에덴을 새처럼 날아다녔나요
당신이 잠자는 날, 늑대가 소녀를 물고 숲속으로 사라진 날의 동화를 알고 계시나요
세배나 몸집이 큰 늑대가 소녀의 손을 잡고 들어간 으슥진 골목
늑대는 사과를 먹었나요 소녀에게 먹였나요
날카로운 손톱을 감춘 커다란 두 손에 밀가루를 잔뜩 묻힌
늑대는 어둠 속에서 야광처럼 빛나는 눈을 가졌어요
늑대는 아담을 닮았나요 아담이 늑대의 탈을 썼나요
이브가 늑대에게 속은 걸까요 아담을 믿었나요

아담의 갈비 하나뿐인 힘으로 늑대를 이길 수 있나요
당신을 한순간이라도 사랑한 적이 있나요

(강혜성의 “뱀만이 아는 진실”)

인간은 원죄를 지고 태어났는데, 그것은 에덴의 동산에서 인류의 어머니인 이브(Eve)가 뱀으로부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과인 사과를 먹음으로써 비롯되었다는 것이 성서(聖書) 의 논리이다. 이런데 이 원죄를 저지르게 한쪽이 누구냐를 화두로 삼고 있다. “당신의 마술로 아담의 숨은 다리가 쑥쑥 자랐어요”라면서 원죄를 좀 더 근원적으로 따져 보자는 것이 시인의 주장이다. 인간이 창조될 적에 왜 남자에게 남성의 생식기를 자라게 해 줬냐는 논리인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런 생식기가 애초에 없었다면, 여성에게 출산의 고통을 줄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논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브가 창조될 때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 이브의 몸속에 애꿎은 새끼집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걸까요” 하느님은 이브를 창조할 때 뱀이 똬리를 틀 수 있는 새끼집처럼 이브가 미처 죄를 짓기도 전에 미리 이브의 몸속에 자궁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은 이브가 원죄를 저지른다는 사실은 미리 기획한 것이 아니냐는 논리이다. 정말 필자도 이러한 합리적인 의문을 가지고 오래전부터 창조주에게 묻고 싶었다. 창조주는 정말 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인류를 창조하였고 그래서 고의로 인류에게 죄를 짓게 하고 동시에 벌을 내린 것인가.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등치고 배 만지는 논리가 아니겠는가?’

같은 논리로 “세배나 몸집이 큰 늑대가 소녀의 손을 잡고 들어간 으슥진 골목 / 늑대는 사과를 먹었나요. 소녀에게 먹였나요”라는 비유로 맞서고 있다. 이 경우 죄는 늑대가 저지른 것이지 소녀가 죄인이 아닌 것처럼 원죄 또한 이브의 죄가 아니라는 논리다. 그러니까, “늑대는 아담(Adam)을 닮았나요 아담이 늑대의 탈을 썼나요”라는 말처럼 남성을 달고 태어난 아담이나 늑대처럼 나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그들이 원죄의 주인공이지 이브(Eve)의 잘못이 아니라는 논리다. 강혜성 시인의 문제의 제기는 매우 합리적이지 않은가.

강 시인의 논리라면 원죄의 근원은 이브가 아닌 하느님이나 아담일 수가 있다는 논리요, 애꿎은 뱀만 누명을 쓴 꼴이다. 우리 속담에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과실이든 한쪽의 일방적인 실수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다소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논리성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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