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의를 벗어날 수는 없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의를 벗어날 수는 없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1.08 16:1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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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의를 벗어날 수는 없다

의가 되기 위해서 평생을 골몰했나
의가 되어 평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나

너의 우리의 사랑의 그들의
뒤는 언제나 빈자리
몇 마리의 새라도 앉혀야 할 은신처
의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깍두기

지금 의는
편두통 안에 힘껏 몸을 낮추고 퍼덕퍼덕 야윈 꽁지를 흔든다
낮달처럼 날아가는 중이다
몰래 내린 밤눈처럼 고요해지는 중이다

그러나 의는 농담의 언저리 돌기를 좋아한다
말풍선이 비눗방울 같은
허풍선이 뱃멀미같은
정체불명의 농담 속을 헤엄치기를 좋아한다
끝없이 확대되고 늘어나는 의에는 고향같은 것이 있다

의를 벗어날 수는 없다
하나는 문밖에
하나는 문안에
저기 또 하나가 오고 있다

(최휘의 ‘의’)

이번 시는 우리 말에서 조사의 일종인 ‘의’를 소재로 한 시라 독특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이다. 조사 ‘의’를 어떻게 정의를 내리고 있으며, ’의’에 숨어 있는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본 시에서 말하는 ‘의’는 “너의 우리의 사랑의 그들의”처럼 우리 말의 관형격 조사를 소개한 것이다. 이 관형격 조사를 이용한 예를 보면, “나의 시”라고 하면 나의 소유물이 될 뭔가를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시인으로서의 나”라고 하면 나의 자격(지위?)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인은 작품에서 “의가 되기 위해서 평생을 골몰했나 /의가 되어 평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나”라고 말하고 있어서 후자의 의미를 선택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평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최선을’의 의미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인생을 길을 찾기 위해 시도된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의미할 것이다. 이 말은 마치 논리학에서 대전제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누구든 각자의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다르므로 ‘의’의 뒷말에 대해서는 특정을 지을 수 없어 ‘빈자리’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보잘것없은 위치나 때에 따라서는 인생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했음을 비유하여 ‘몇 마리의 새나’나 ‘깍두기’라는 표현을 동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자신의 역할을 찾기 위해 “편두통 안에 힘껏 몸을 낮추고 퍼덕퍼덕 야윈 꽁지를 흔든다 /낮달처럼 날아가는 중이다 /몰래 내린 밤눈처럼 고요해지는 중이다”라고 하여 각자의 ‘의’를 찾고자 노력하는 개인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때때로 크고 작은 ‘의’의 빈자리를 찾기 위한 역할들이 생각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거나, 우연히 나의 의의 빈자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익숙하게 나의 의를 찾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의는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위치로 다가올 수 있으리라는 의도가 네 번째 연의 이야기일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우리의 의를 찾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 아닐까.

이번 시를 읽다가 문득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의 수상록에 있는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 “뭐? 그럼, 자네는 살아있지도 않았단 말인가? 자네의 소임 가운데 가장 근본적일 뿐 아니라 가장 빛나는 것은 삶 그 자체라네”라는 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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