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집은 창문 쪽으로 기울었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집은 창문 쪽으로 기울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1.15 14:4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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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집은 창문 쪽으로 기울었다

밤의 묶음에는 가루가 된 이야기가 하얗게 쌓여있다 창틀에 묻혔다가 손으로 닦아내면 절반은 먼지가 되고 남은 반은 성한 귀로 전염병처럼 떠돌았다
비 내리는 마을, 비 내리는 골목, 첫 술잔을 마지막 술잔으로 마신 사람이 자기를 더러운 구정물로 쏟은 후에 발자국에 고여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까지 하수구를 뚫었다
빗물이 제 무게를 강요하며 하수구로 흘러든다 하수구 구멍은 지킬 게 없어 조용하다 하수구 구멍에 몸을 맡기며 나의 잠은 물방울에 갇혀있다
집은 어둠을 비우려고 창문 쪽으로 기울었다

(박병수의 ‘익사자’)

이 시는 원래 행 구별이 없는 산문시지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최소한의 범위에서 임의로 행을 나누어 보았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다. 일단 제목이 익사자라고 했으니, 당연히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겠다. 시간적인 배경은 밤이다. 그것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은밀하거나 무관심 속에서 일어난 일을 메타포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다. 때에 따라서 죽음들 가운데는 세인들로부터 쉽게 잊혀버리거나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죽음론에 대해서 시인은 그것을 ‘절반은 먼지가 되고 남은 반은 성한 귀로 전염병처럼 떠돌았다’라고 말한다.

두 번째 연에서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어느 마을 외진 골목집에서 술에 취해 스러져 잠든 사람이 ‘나에게까지 하수구를 뚫었다’라고 하여 나의 입속으로 구정물(빗물)이 흘러 들어왔다고 한다. 뭔가, 이 불길한 의미는, 짐작한 대로 물속에 빠져 물을 마시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술기운으로 잠이 들었다가 집으로 흘러들어온 물에 잠겨 익사했다는 이야기는 두 가지의 전제가 있다. 첫째, 하늘에서 많은 비가 쏟아져 세상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는 이야기거나, 두 번째 그래도 집 안에서 익사했다는 논리는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쳐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또 모를까..., 그렇다. 이렇게 되면 이 집은 반지하 주택임이 틀림없는 상황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지하 주택은 문자 그대로 땅속에 있는 집이기 때문에 더 이상 물이 빠져나갈 하수구가 없다. 그래서 물이 하수구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더 이상 물을 흘려보낼 수 없으므로 ‘하수구 구멍은 지킬 게 없어 조용하다’라고 하여 점차 물이 고이는 상황을 메타포(metaphor)화 하고 있다. 그래서 ‘하수구 구멍에 몸을 맡기며 나의 잠은 물방울에 갇혀있다’라고 했다. 물방울 속에 갇힌 잠이라?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잠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것도 물방울 속이란다. 이 이야기는 우기(雨期)에 지하 주택으로 가득 몰린 빗물 속에서 유명(幽明)을 달리한 어느 도회지의 서민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 새날이 밝아오자, ‘집은 어둠을 비우려고 창문 쪽으로 기울었다’라고 하여 지하 주택 창문으로 비친 햇빛으로 사건전모가 드러나게 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다.

슬픈 일이지만, 장마철에 뉴스를 통해 가끔 들리는 이야기다. 시인 역시 가끔 이러한 뉴스를 접했으리라. 이러한 슬픈 사연을 포착하여 시 작품으로 승화한 것이니 현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으며, 사회적 이슈를 드러냄으로써 같은 불행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시인의 의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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