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물방울별들 반짝거리자
시와 함께하는 세상-물방울별들 반짝거리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1.29 17:1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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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물방울별들 반짝거리자

문득 생각했습니다
기타와 우물은 서로 흉내 낸 악기라고
어둑살 젖어오는 속엔
출렁거리는 무늬들이 보였지요
달이 들락거린 듯한 울림통으로
두레박줄을 드리웠지요
투둑, 투둑, 물방울 음표들 흩어졌지요
전깃줄의 제비들 후다닥 날아가고
먼 나라 알함브라 궁전의 물줄기가
얼굴을 때리며 날아들었지요
현의 떨림으로
그들이 퍼 올리던 이름도 둥글게 파문져갔겠지요
두레박줄은 우물의 깊은 곳을 건드린 것입니다
기타 소리가 어둠을 불러오고
물방울별들 반짝거리자
움푹한 구덩이를 빠져나온 달덩이에
마을이 환해졌었지요
이젠 포도주가 마냥 익어가고 있을 우물,
향기라도 나는지
동네 개들 짖어대는군요

(서영처의 ‘다시 오래된 우물’)

서영처 시인은 원래 바이올린을 전공한 사람이다. 그런 탓인지 그녀의 시나 글에는 음악과 관련된 작품이 많다. 이번에 소개되는 ‘다시 오래된 우물’은 제목부터 강한 메타포가 있다. 지금이야 대부분 수돗물로 생활하지만,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 어느 마을에는 우물물을 생활용수로 활용했다.

그러니까, 시제에서 굳이 ‘다시’라는 말을 집어넣은 것은 당연히 오래전 우물을 보면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소리를 무심히 보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는 것이고 지금 다시 생각해 본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다시’라는 말은 추억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의미를 가지고 생각해 본다는 뜻이 되기도 하다.

시인은 성인이 되어서 음악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기타의 음률에서 문득 어릴 적 귀에 익힌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던 소리와 비슷하다면서 서두를 꺼낸다. 그리고 두레박의 출렁거리는 무늬를 통해 곡을 연주하는 현악기를 연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울림의 소리가 다소 과장적이긴 하지만 제비가 날아다니는 듯, 알람브라 궁전의 분수대 물줄기 소리와 흡사하다고까지 한다.

알람브라 궁전은 스페인 남부 지역으로 중세 이슬람교도들이 최후까지 저항했던 곳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수년 전 그곳을 여행해 본 적 있는 필자도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 적이 있다. 일찍이 스페인의 기타 연주가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가 알람브라 궁전의 위용과 아름다움에 감명받아 작곡했다는 기타 연주곡인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음률 소리를 들으면 그 음률이 마치 물방울이 튕기는 듯한 소리를 연상하게 된단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타레가의 기타 음에서 그야말로 옥구슬 굴리는 듯한 트레몰로(Tremolo) 멜로디가 물방울이 퍼지는 듯한 연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알람브라 궁전 뜰에는 사각형의 넓은 분수대가 있어서 곳곳에서 물이 올라오는데, 그때는 미처 물방울 소리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아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물방울이 튀던 아름다운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사랑이 피고, 먼 길을 달려온 목마른 기사에게 물을 전달하는 아가씨의 이야기처럼 문학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물이나 우물은 남녀 간의 사랑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타의 현음과 두레박의 줄에서 튕겨 나오는 떨림의 소리에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타 소리가 어둠을 불러오고/ 물방울별들 반짝거리자/ 움푹한 구덩이를 빠져나온 달덩이에/라는 말에 담긴 메타포(metaphor)는 분명 남녀 간의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다. 즉, 어둠이나 별이나 물방울처럼 반짝이는(여인) 그리고 움푹한 웅덩이를 빠져나온 달덩이에서 상징하는 메타포는 더욱더 심층적이고 중의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물에서도 포도주 향기가 난다는 는 말이나 동네 개(주정뱅이)들이 짖어댄다는 말에서 술과 사랑 때문에 이국적인 연애심이 생기게 된다는 논리다. 그래서 흔들리는 두레박 줄에서 낭만적인 기타의 음률이 연상된다는 것이다.

다소 에로틱하거나 난삽한 내용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지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에로틱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률에서 느끼는 감성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편의 오페라 배경음을 연상케 하는 ‘다시 오래된 우물’을 감상해 보노라면 갑자기 젊은 시절의 내가 절실히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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