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봉짓값을 벌었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봉짓값을 벌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2.06 17:1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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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봉짓값을 벌었다

해변으로 떠내려온 나체가 있다
익사체를 구경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진짜 같아

누가 사람인가

단골 술집에서 나온 사람이 눈밭에 쓰러진 사람을 보았다
세상에 믿을 게 없어요
이것은 노래인가 아우성인가

지하철 알루미늄의자에 앉아 그는 외국에서 올 여자를 상상한다
무료배송으로 도착할 진짜 여자의 촉감을 기대한다
인터넷 쇼핑몰 뒤져 걸스카우트 유니폼을 고르고 있다
말을 하는 여자는 피곤해

지난번 여자는 해변으로 내려가서
여섯 개의 조각으로 손쉽게 버렸다
분리수거 봉짓값을 벌었다

(김이듬의 ‘리얼리티’)

우리 사회는 지난 몇 년 동안 전무후무한 코로나 사태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 특히 고통스러웠던 것은 각자 격리된 상태에서 생활하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고립된 생활의 연속이란 것이 우리의 심리 상태에 여러 가지 변화를 주었다. 그 부작용으로 모든 문제를 인터넷으로 해결하던 것들이 습관화되어서 현실과 가상공간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지게 되었다. 그 부작용으로 일탈행위 또한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는데 성폭력이나 살인 사건이 예전에 비해 더욱 빈번하게 된 것은 이러한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서 나온 후유증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인 역시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해변에 시체가 떠내려왔는데 생뚱맞게 “정말 진짜 같아”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건 가짜시체란 말인데, 가짜시체라…, 다음 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된다. 눈밭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다는데, “세상에 믿을 게 없어요”라고 한다. 이 사람 역시 가짜라는 이야기다. 참으로 애매모호한 말이다. 그리고 다음 연에서는 외국에서 오는 여자를 기다리는데, 무료 배송으로 온다고 한다. 배송으로 온다고…? 여자가 스스로 오는 것이 아니라 배송으로 온다고? 그렇다면 이들은 진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고 사람 형상을 했다면, 이건 인형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는 바로 “말을 하는 여자는 피곤해”라는 부분이다. 즉, 말을 할 수도 없고 물론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여자다. 당연히 인형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인형은 어린아이의 장난감이 아니라 성인을 위한 인형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혼자 있을 때는 온갖 욕구를 상상하게 되는데 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 인형은 바로 그러한 도구에 적격할 수 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 도구는 쉽게 싫증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또한 쉽게 버리기도 한다. 해변에 떠내려온 익사체나 눈밭에 쓰러진 사람은 바로 그렇게 버려진 도구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마지막 연에서 “지난번 여자는 해변으로 내려가서 / 여섯 개의 조각으로 손쉽게 버렸다”라고 한 이야기가 뒷받침해 주는 것처럼 바다에 버렸다는 사실과 해변으로 떠내려온 사실은 서로 무관하지 않게 보이기 때문이다.

민망한 내용도 내용이겠지만, 앞서 “정말 진짜 같아”라고 한 말들을 생각해 보자. 인터넷을 통해 쉽게 구매해서 쉽게 버리는 인형이라지만, 그 가운데 “누가 사람인가”라는 말 속에는 형체에 따라 인격을 생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까 그러한 사람과 같은 존재를 조각내고 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생명 존중 의식이 점차 사라질 수 있는 습관에 봉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했듯, 현실과 가상공간에 대한 동일성 내지는 모호성으로 흐르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 이 가상적 상황이 현실적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상황적으로 볼 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여기에 있고 이것은 사회로 보내는 상징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시제 또한 ‘리얼리티(reality)’로 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다행히 지금은 긴 팬데믹(pandemic)이 끝나고 정상적인 사회로 흘러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이 완전히 해결된 것 같지 않다. 시를 감상하면서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정상적인 사회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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