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우리 할머니가 맞아요?
시와 함께하는 세상-우리 할머니가 맞아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2.13 17:3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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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우리 할머니가 맞아요?
 
개의 환생을 믿는 유목민들은 죽은 개의 꼬리를 잘라 잠자는 머리맡에
묻어 둔다고 한다 죽인 수만큼 촛불을 켜고
벗긴 가죽만큼 절을 하고
 
이런 느낌일까
머리맡에 묻힌 기분은
할머니는 짐승의 배설물로 불을 지핀 게르 안에서 빵을 굽고 있다 한번도
빵을 구워 본적이 없는데
 
따뜻하고 물컹한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뿌리며
작고 예쁜 개를
앞니가 썩은 야윈 여자아이를
 
할머니,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가 맞아요? 지금
나를
개와
나와
개를, 우리는
똑같이 화로 안에서 태어나고 있나요?
 
(서유의 ‘다큐멘터리’)
 
1933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13대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고 1935년 7월 6일에 14대 달라이 라마가 환생했다는데, 그 사이의 공백은 레팅린포체라는 사람이 섭정(攝政)으로 대신 정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14대 달라이가 6세 되던 해부터 정치를 하게 되었지만 1957년 14대 달라이 라마가 18세 되던 해에 중국이 무력으로 티베트를 침공해 오자 인도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감독의 “쿤툰 리뷰(Kundun review)”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줄거리다.

다큐멘터리란, 사전적인 의미로 기록으로 남길 만한 사회적 사건 등을 사실적으로 제작, 구성한 영화나 드라마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시인의 시에서 다큐멘터리의 주제 역시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민속의 일종인 ‘환생(還生)’과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가축을 기르는 유목민들에게 개란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개에 대한 애착이 강하여 개가 죽은 뒤에도 그들의 영혼과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개의 꼬리를 잘라 머리맡에 두고 때때로 절까지 하는 등, 개에게 최고의 예우를 해 준다는 내용이다. 아마 충성스러웠던 개가 다시 환생하기를 바라는 목동의 마음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라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하고 있다.

두 번째 연에서 “이런 느낌일까/ 머리맡에 묻힌 기분은”이라고 하여 이후부터는 가설에 근거하여 상상으로 화제를 옮겨가고 있다. 빵을 구워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할머니가 갑자기 유목민들처럼 가축의 배설물로 빵을 굽는 상상과 그 할머니의 전생이 유목민이라는 가설, 그리고 할머니는 가끔 “작고 예쁜 개처럼” 나를 보고 ‘어이구 내 강아지’라며 귀여워하셨는데, 그래서 나도 “앞니가 썩은 야윈 여자아이를”이라는 말처럼, 나도 전생에 유목민들의 많은 딸 중의 한 명이었다는 상상, 이렇게 상상은 끝이 없는데, 결론은 ‘무엇보다도 현재 나의 할머니인 당신도 진짜 전생에도 나의 할머니였고 나는 당신의 예쁜 강아지 같은 나도 당신의 손주였을까요?’라는 논리를 펴면서 “똑같이 화로 안에서 태어나고 있나요?”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몽골인에게 화로(火爐)란 게르(Ger) 속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가족과 같은 사람이란 의미로 쓰이는데 화로 안에서 태어났나요? 란 말은 우리가 전생에 가족이었겠지요? 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환생은 불교의 윤회(輪廻) 사상과 비슷한 내용이다. 예로부터 몽골과 티베트에는 불교의 일종인 밀교(密敎)가 성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고려 시대 때도 밀교가 등장했고 지금도 진각종은 종파는 여기에 일종이다. 특히 티베트 밀교에서는 시인이 언급한 환생이나 전생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시인은 어느 날 앞서 언급했던 “쿤툰 리뷰”와 같은 내용들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과정에서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고 그 결과 이와 같은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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