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헛웃음을 치며 돌아선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헛웃음을 치며 돌아선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2.20 17:3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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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헛웃음을 치며 돌아선다
 
둥그런 차창 하나 입에 넣는다
강둑에 도열한 수은등도 삼킨다
에어컨 바람은 콧날을 내리누르고
전동차는 저 혼자 어둠을 헤쳐간다
자정의 들판은 점차 내려앉고
그대 체온은 내 열기를 돋운다
지상의 전신주들은 조그마한 등불을
매달고 졸고 있다
허벅지를 드러내 여자들이
나비 우산을 접으며 불륜을 이야기한다
허접하게 심은 임플란트가 입술 밖으로
무너지는 동안
손 하나가 내 둔부를 만진다
저만치 흰 맥고모자를 쓴 제비 한 마리가
내 앞으로 걸어와서
어깨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댄다
환승역에서 헤어지는 사람들끼리
헛웃음을 치며 돌아선다
 
(강헤라의 ‘플랫폼’)
 
비교적 오늘날 건조한 도회지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시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특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만, 반대로 무엇보다도 시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리하여 발레리(Paul Valéry)의 말처럼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분명 시인은 단순한 감성 표현의 이면에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이번 시 역시 특별한 메타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저녁 무렵 집으로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철을 타고 이동 중이다. 둥그런 차창 하나를 입에 넣는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전차의 창이 왜 둥근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입에 넣을 수 있을까. 아마, 시간적인 배경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것은 전차의 차창이 둥근 것이 아니라, 전차 바깥의 수은등이 둥글게 켜진 상태로 전차가 그 옆을 지날 때마다 빛이 둥근 모양으로 투영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입에 넣는다는 말은 전동차가 앞으로 지나갈 때마다 그 수은등이 뒤로 빠져나가는 상태를 측면에서 보게 되면 마치 그 둥근 전등이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로 전동차가 출발한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 시간상으로 어둑어둑한 상태를 의미하며 뒤에 나오겠지만, 약간의 부적절한 거리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여름이라,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소 선정적으로 비칠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어둑하여 다수의 사람은 졸기도 한다. 거기다가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들이 있다는 이야기이고, 그녀들과 관계된 엉큼한 상황을 이야깃거리로 삼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 허접한 임플란트의 사나이가 나의 엉덩이를 만진단다. 이거는 성추행범임이 틀림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성추행범은 완벽한 증거 없이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도리어 역공을 받을 수도 있다. 참 난감한 상황이다. 어디 그것뿐이랴, 건너편에 신사 모자를 쓴 요상하게 생긴 놈이 멋쟁이 차림으로 나에게 접근을 해온다. 그리고 육감적인 말로 유혹하는 상황이다. 이거 완전히 갈수록 태산이다. 다행히도 환승역에 도착했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그 요상하게 생긴 놈은 닭 쫓던 개처럼 돌아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번 시는 자유분방한 거리의 풍경을 여과 없이 소개해 줌으로써 서민들의 애환을 소재로 하고 있다. 자칫 유혹에 빠질 수 있는 곳이 요즘의 밤거리일 수도 있다. 최근 부쩍 이러한 상황과 관련된 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엔 요즘 사회가 너무 도덕적으로 해이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인이 이 사회를 향해 단진 메타포(metaphor)에 대해서 공감이 되고 매사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철학자 공자가 “시경에 나오는 삼백 편의 시를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자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詩三百 一言而蔽之 思無邪)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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