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슬픈 52Hz를 꿈꾸며
시와 함께하는 세상-슬픈 52Hz를 꿈꾸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3.12.27 17:34
  • 15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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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슬픈 52Hz를 꿈꾸며

고래가 이해되기 시작한 건 슬픈 일이야
쓰고 또 쓰고
지우고 쓰고
또 쓰고 지우고

바다는 무한해
무한하다는 말은 왜 슬프지?
용솟음치든 꼬물거리든 자빠지든 무릎이 깨지든
어찌하든, 쓴다

대왕고래 청고래 향고래 범고래 혹부리고래
브라이드고래 아르누부고래 피그마부리고래
허브부리고래 부리고래부리고래

꿈틀거린다, 휘젓는다, 내달린다, 난다, 움츠린다,
기진맥진한다, 베인다, 잠수한다, 숨통이 조인다,
베인다, 바다에 베인다, 놓지 못한다, 그냥 베인다

고래가 점점 사라지는 건 바다가 무한하기 때문이야

어느 구멍이든 파보면
오래전 사라졌던 눈이 퀭한 고래가
부리고래부리고래 자신을 벤 바다를 꿰매고 있을 거야

고래가 닿지 못하는 소리 저 너머의 바다
가장 신선하고 난해한 바다를 입에 문
슬픈 52Hz를 꿈꾸며

(이선정의 ‘고래, 52’)

일반적으로 샤먼은 접신(接神)을 하고 공수(拱手)를 시작하게 되면 신어(神語)를 발설한다. 그 신어는 신이 샤먼의 입을 빌려서 하는 말로 미처 샤먼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마치 큰 연못의 둑이 터져 쏟아지는 물처럼 걷잡을 수가 없다. 시인은 오랫동안 참고 참아왔던 묵언 수행 중에서 갑자기 말문이 터져 하는 신어처럼 시어에 등장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평소에 꼭 하고 싶은 말이었던 것처럼 막힘없이 술술 흘러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첫 번째 연에서는 평소 시인이 시를 쓰는 과정을, 두 번째 연에서 말하는 바다란, 당연히 문학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정열을 그리고 세 번째 연에서는 문단에서 볼 때, 나의 위상을 추측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속한 문단에서 문학을 위해 나의 입장에서 노력하는 상황을 말하겠지만, “고래가 점점 작아지는” 것처럼 나는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나의 노력에 비해 문단에서 나의 존재는 미미하다는 한탄 조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여섯 번째 연이나 일곱 번째 연에서는 각각 경쟁의 대열에서 사라지거나 반대로 누구나 꿈꾸는 지명도가 높은 작가를 꿈꾸는 상황을 대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슬픈 52Hz를 꿈꾸며”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각주를 붙여주고 있는데, 이른바 보통 고래의 주파수가 15Hz~20Hz이기 때문에 52Hz는 다른 고래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고 소개한다. 그러니까, 52Hz의 주파수의 의미는 당연히 짐작이 갈 것이다.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모두 그 방면의 전문가이니까 당연히 잘 써야 하고 잘 쓸 수 있을 것인 것이 사회적 통념이다. 다른 분야도 그러하겠지만, 그 이면에는 누구도 쉽게 볼 수 없는 노력과 정열이 투자된다는 것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요체가 아닐까를 생각하면, 옷깃이 여며지지 않을 수 없다.

송나라 때 유명한 시인인 소동파의 일화가 생각난다. 자기 집에 방문한 친구들이 그의 시 ‘적벽부’의 훌륭함을 칭찬하자 그건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일필휘지한 것이라며 으쓱거렸다. 하지만, 그가 잠시 화장실을 간 동안 소동파의 보료(일조의 방석)가 불쑥하여 친구들이 들추어 보니 거기에는 수백 번을 첨삭한 ‘적벽부’의 원고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천재 시인 또한 좋은 시를 위해서 수백 번을 첨삭하는데 하물며 범상한 시인들이야 말해 뭣하겠는가. 정작 고래, 52에서 말하고자 한 의도는 소동파처럼 프로 시인의 창작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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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정 2023-12-28 07:55:58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