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한밤의 폭죽처럼 터져 나온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한밤의 폭죽처럼 터져 나온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03 16:08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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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한밤의 폭죽처럼 터져 나온다

벚꽃들이 쉼 없이 입을 연다
겨우내 참았던 나무의 내력이 한밤의 폭죽처럼 터져 나온다

고음과 저음이 뒤섞인 백색소음
구체적으로 퍼진다
밤보다 넓은 음폭으로

흔들리는 가지,
그 사이사이에 만연체로 떠도는 소문 중
가장 떠들썩하다는 입은 너무 가벼워
날개도 없이 공중을 휘돌며

야경이 된다
축제처럼 들떠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구제 불능의 바닥을 선물한다

깊어가는 어둠
불꽃놀이는 더욱더 현란해지는데
난장 속에 바닥을 치는 꽃잎들을 쓸어내고
나는 컴컴한 구석이 되어 눈을 감는다

저렇게 소란한데
이렇게 고요한 게 잘못인가.

(조영란의 ‘백색소음’)


예쁜 시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했던 셀리(Percy Bysshe Shelley)의 말처럼 봄은 곧 올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와 관련된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뭐니 뭐니해도 봄이면 대개 벚꽃이 제일이다. 식물에 있어 꽃이란 어떤 존재인가. 꽃이 피고 지고 나면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고, 열매는 2세 생산의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어떤 식물이든 크고 작은 정도에 따라 눈에 띄기도 하고 띄지 않기도 하지만 꽃은 피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식물에 있어 꽃이란 동물의 월사(月事) 행위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DNA의 흔적을 남기는 꽃은 자손생산이라는 본능이다. 시인은 그 생식의 행위를 “입을 연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입을 여는 행위가 마치 팝콘이 터져 사방으로 흩어진다고 한다. 상상해 보시라 하얀 벚꽃이 팝콘처럼 사방으로 퍼지고 있는 모습을…, 생명 탄생에 대한 역동적인 이미지가 대단하지 않은가.

그 하얀 꽃이 팝콘처럼 퍼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마치 펑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니 시각적 이미지를 교묘하게 청각적으로 전환한 점도 매우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것도 “고음과 저음이 뒤섞인 백색소음/ 구체적으로 퍼진다”라고 하여 고음 저음으로 들린단다. 당연히 크고 작은 꽃들이 화려하게 곳곳에 가득 피어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더구나 낮이 아닌 밤이 되면서 화려함은 더해지고 게다가 꽃잎들이 바람에 나부껴 허공으로 떠도는 것을 “가장 떠들썩하다는 입은 너무 가벼워/ 날개도 없이 공중을 휘돌며”라고 청각 시각적 이미지를 동원하고 있다. 소리 소문의 가벼움을 이렇듯 공감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마치 아름다운 벚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눈앞에 보이는 듯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그 벚꽃이 사람들에게 “구제 불능의 바닥을 선물한다”고 한다. 그리고 사방으로 날리는 불꽃이 현란하단다. 당연히 선물과 불꽃은 동일 개념으로 원관념이 벚꽃임을 알 수 있다. 이러듯 벚꽃의 다양한 이미지를 형상화함으로써 시인이 벚꽃에 대한 감성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상세하게 표현하고자 한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연에서 팝콘이 펑펑거리듯 요란할 법한데, 사실은 벚꽃이 피고 지고 날리는 데는 전혀 자체적인 음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이미지와 현실 사이에서 오는 과정상,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오는 이질적인 장면을 무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아이러니하게 미적 감각을 높이고 있다. 그러면서 시의 첫 부분부터 아름다운 벚꽃의 무리를 보는 순간 환상적인 감성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마지막 연에서는 현실적인 이성의 세계로 돌아오는 장면을 표현한 방법으로 마치 판타지 세계에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듯한 효과로 마무리하고 있음이 이번 시의 특징적이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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