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유리 조각을 빼내고 싶지 않았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유리 조각을 빼내고 싶지 않았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10 14:24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유리 조각을 빼내고 싶지 않았다

매일 아침 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선다

빛기둥 아래 놓인 색색의 유리구슬
갓 낳은 달걀처럼 따뜻한 그것을 한가득 담아 돌아오면

할아버지는 유리구슬을 넣어 빵을 굽는다
빵 하나에 구슬 하나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향긋하지 않은 것은 없다

실수로 구슬 하나를 떨어뜨린 날
할아버지께 호되게 혼이 났다
아가야, 저 침묵을 보거라
한 사람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되었구나

흩어진 유리 조각 틈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배를 뒤집고 죽어 있었다

손그릇을 만들어 물고기를 담으니
기린처럼 목이 길어졌다

할아버지, 영원은 얼마나 긴 시간이에요?
파닥거릴 수 없다는 것은

빛나는 꼬리를 보았다
두 눈엔 심해가 고여 있었다

층층이 빵을 실은 트럭이
지상을 향해 돌아가는 동안

한없이 길어진 목으로
삶이 되지 못한 단 하나의 영원을 생각했다
손톱 밑에 박힌 유리 조각을 빼내고 싶지 않았다

(안희연의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철학자인 폴 발레리(Paul Valery)의 ‘작가가 작품을 창작해 내지만,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라는 말을 사랑한다. 특히, 안희연의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를 여러 번 읽어 보는 동안 할아버지와 유리구슬과 빵의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다소 설화적이면서도 이질적인 문화적 연결고리에서 동질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듯하고, 없는 듯하면서도 있는듯하여 그 연결고리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염치 불고하고 과감하게 발레리의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

이 셋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혼재된 형태로 보인다. 그것은 제목부터 그런 면을 느끼게 된다. ‘달의 아이’는 일본의 판타지 소설 속의 인물이다. 인어족이라는 종족의 종족 보존에 관한 이야기로 일종의 생명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할아버지는 우리 설화에 등장하는 삼신할미와 같은 존재로 중국 설화에 해당하며, 유리구슬은 인간의 영혼과 관련되며, 빵은 요한복음서에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고 한 예수의 말처럼 인간의 육신으로 설정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서술자는 당연히 달 아이의 역할을 하는 존재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지상에서 탄생할 생명을 만들어 가는 할아버지는 세상에 태어날 다양한 영혼을 “빵 하나에 구슬 하나”로 연결하는데 실수로 나는 그 구슬 한 개 즉, 영혼 하나를 떨어뜨리게 되고, 그것 때문에 “물고기 한 마리가 배를 뒤집고 죽어 있었다”라는 말처럼 한 생명의 탄생이 나의 실수로 좌절된다는 논리다. 가엽게도 기린처럼 목이 길게 늘어져 죽은 영혼은 영원히 살아날 수 없다는 것(파닥거릴 수 없음)이고 죄책감으로 그 영원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되묻게 되는 것이다.

다른 영혼들은 지상을 향해 환생의 길을 가지만, 영혼이 떨어져 환생할 수 없게 된 생명은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삶을 이루지 못하게 된 생명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의 손톱 밑에 박힌 아픈 구슬의 유리 조각을 뺄 수가 없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다.

언뜻 황당무계한 이야기인 듯하지만, 판타지 종류의 소설이 횡행하는 지금의 시대에 소설뿐 아니라, 시에서도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