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시와 함께하는 세상-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1.31 11:0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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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산 밑에 집을 얻으니 바람 다니는 길 따라 소리가 문에 모였다

새떼가 내려와 녹두꽃 같은 입소리를 풀곤 했다

여름날 음지 식물처럼 대나무밭을 내려 그늘을 치고 누웠다

그늘은 몇 발짝씩 소리를 안으로, 그늘 밖에서 파인 소리를 어쩌지 못한다는 듯 들여보냈다

그러면 나도
한번 깊게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절벽을 내어 보였다

(김필아의 ‘여름 바깥’)

바야흐로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곳곳에서 구설에 휘말리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은 말과 관련된 시를 한 편 소개해 볼까, 한다. 이번 작품은 시가 문장이 잘 맞는 것도 맞는 것이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숨은 메타포가 없는 듯하면서도 있는 듯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없는 듯하여 간결하면서도 참신성을 더해 주고 있다. 시제가 ‘여름의 바깥’이다.

여름 하면 더위 문제로 몸살을 앓는데, 이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풍속도 이야기다.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고자 자주 집을 비우게 되고 동네 어귀에 있는 나무 그늘로 자연스럽게 모여든다. 때때로 낮 시간대를 넘어 늦은 밤까지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못하게 되는 예도 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온갖 여야기가 다 나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주고받는 분위기가 조성도 기도하는 여름날의 풍속도를 그리고 있다.

시에서 말하는 ‘바람 다니는 길’의 표현이 재미있다. 산골짜기를 타고 오는 바람의 길을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바람은 그러한 자연풍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말이 날아다니는 길 그러니까 동네의 풍문(소리)이 오가는 길이란 이야기란 의미의 중의적 수법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수 모이는 곳에는 종종 동네의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새 떼’는 당연히 소문을 내는 발화자(發話者)를 메타포로 삼은 셈이다. 그러니 그들은 입소리(풍문)를 뿌리는 행위를 하는 셈이다. 그래서 비밀스럽게 나오는 소문들은 발화하기 전에 ‘이건 너만 알아둬’ 혹은 ‘비밀인데 말이야’라는 말이 관용적으로 나온다. 시인은 이것을 음지 식물’이라는 시어(詩語)로 재생산해 내고 있다.

그리고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음지 식물처럼 대나무밭을 내려 그늘을 치고 누웠다/ 그늘은 몇 발짝씩 소리를 안으로, 그늘 밖에서 파인 소리를 어쩌지 못한다는 듯 들여보냈다”처럼 남몰래 그리고 속삭이듯 말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자도 당연히 화자의 장단을 맞추게 되고 더욱 크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듣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까지 가게 되면 소문에 대한 공범 관계(절벽)가 형상된다는 것이 시인의 이야기다.

이번 시는 다소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재미있는 듯하지만, 비교적 짧은 시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교훈성이 짙은 작품이다. 그리고 그 속에 숨은 메타포(metaphor)는 우리가 가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 내용이다. 흔히 말이란 화살과 같아서 한번 뺏으면 다시는 거둬들일 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둘러앉아 있게 되면 파한(破閑)을 위해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자칫 법적인 시비에까지 비화로 번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므로 조심하고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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