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시와 함께하는 세상-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2.21 17:32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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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공고
오늘 강사진

음악 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 부문
폴 세잔

시 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 내에 쌓인 두꺼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김수영 휴학계

전봉래
김종삼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고 있음.

교사(校舍)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김종삼의 ‘시인학교’)

만약 우리나라에 대통령으로 세종대왕이, 국무총리에 황희, 외교부 장관으로 서희, 국방부 장관으로 율곡, 과학부 장관으로 장영실, 육군참모총장에 강감찬, 해군 참모 총장에 이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에 대해서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시를 소개하는 자리에 사설을 늘어놓은 것은 뜬금없다 싶지만, 국가사회든 시인의 사회든 그 사회에서 가장 적절한 인사가 지도자가 된다면 그 사회는 이상적이라는 생각이다. 짧고 간단한 이 시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작고하신 김종삼 선생님의 작품으로 당시 문단에서 활약한 시인들의 인물됨을 설명한 작품이다.
모리스 라벨은 피아노를 전공한 신고전주의 음악가, 폴 세잔느는 동시대 인상파 화가로 두 사람은 프랑스인이며, 에즈라 파운드는 미국인인데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주자다.

한 시대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이들이 선생으로 있는 시인학교라고 하는데, 시인학교라기보다는 예술학교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 학교는 실존했던 것이 아니라, 이런 학교가 있다면 하는 가정적 상황이고 시인들이 이 학교에 수강하고 있다는 가설이다. 그런데 모두 결강이라는 상황일 경우에 시인들의 반응을 설명했는데, 역시 상상으로 이들은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다.

김관식 시인은 후배들에게는 점잖았지만, 선배들에겐 약간의 잘못이 있어도 욕을 하고 조롱했다는 괴짜로 동서지간인 열 살 위의 서정주 시인에게도 대놓고 조롱했다고 한다. 시와 술을 좋아했지만, 유감스럽게도 36세로 요절했다.

김소월이나 김수영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소월의 휴학은 그의 유순하고 감내(堪耐)적인 성격으로, 김수영은 반대로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휴학계를 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의 상징주의자인 폴 발레리를 좋아했다는 전봉래 시인은 28세에 어느 다방에서 음독자살한 인물이다. 유서에 ‘찬란한 이 시대에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는 않았소, 다만, 정확하고 청백하게 살기 위하여 미소로써 죽음을 맞으리다. 바흐의 음악이 흐르고 있소.’ 여기서 바흐의 음악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이다.

김종삼은 비약적 상상력과 뜻밖에 어구의 연결로 난해한 이미지를 만들고 시어의 음향효과를 높이려 했다. 인간성을 상실에 따른 정신적 방황을 노래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보헤미안적 시인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사회 개혁보다는 자신들의 다소 소극적인 성격 탓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대한 반응을 가장 잘 표현되었다 할 수 있다.

이상의 인물들은 동시대인들은 아니지만, 각 시인의 특징을 간단명료하게 소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공통점은 “교사(校舍) /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이란 말처럼 낭만과 시를 사랑했다는 공통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레바논이란, 실존하는 국가명이기는 하지만, ‘아름다운’이나 ‘골짜기’라는 말을 통해 시와 예술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짧은 시지만, 역대 시인들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재미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시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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