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나무는 자라서 어디로갈까요?
시와 함께하는 세상-나무는 자라서 어디로갈까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14 13:43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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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나무는 자라서 어디로갈까요?


학원에 있는 동화책은 낡고 찢어졌어요
엄마, 동화책을 사다 주면 안 되나요?
나는 밝고 환한 색깔을 일고 싶어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단색의 생각만을 가지렴 명조체의 하루로 책장을 넘기는거야
아무도 읽지 않는 책엔 누가 살죠?
생각하는 사다리를 세워 두렴 높은 곳을 향해 뻗는 나무처럼
나무는 자라서 어디로갈까요? 이 책은 나무 무덤같아요

덮어버린 책, 접힌 구석에서 어둠이 자라요
어둠은 구석을 좋아하고 구석은 나를 좋아해요
내게도 구겨질 권리가 있나요?
아프다고 말하면 진짜 아파 버릴까 봐
나는 입을 앙다물고 몸을 말아요

내게서 나가는 방법을 겨우 찾았는데
엄마는 방문을 잠그고 자물쇠를 채웠어요
읽지 않고 덮어버린 나는 당신의 책
책갈피도 없어요
내가 없는 빈방에서
당신은 내가 몇 페이지에 있는지 찾아보세요

(박길숙의 ‘위험한 독서’)

전통사회와 현재 사회의 교육 방법은 많은 차이가 있지만, 대표적인 사례는 ‘일등을 하라’와 ‘다양한 생각을 해라’ 혹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라’와 ‘선생님께 많은 질문을 해라‘이다. 김길숙 시인은 중년 여성으로서 전통적인 사회에서 학업을 한 인물이다. 하지만, 시인은 일찍부터 이러한 전통적인 교육 방식에 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새로운 형태의 교육을 원하는 밝고 환한 동화책을 원하는 나에 대해 엄마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단색의 생각만을 가지렴 명조체의 하루로 책장을 넘기는 거야”라는 하는데 단색이 의미하는 획일적인 사고와 교과서적인 고정된 지식을 의미하는 명조체의 책장을 강요하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학원에 있는 낡고 찢어진 책은 전통적인 가치관으로만 구성된 낙후된 내용이리라. 그래서 아무도 흥미를 느끼거나 읽어주지 않으며, 이미 사라진 가치관이 된 무덤 같은 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읽지 않아서 구석으로 밀려난 책처럼, 역설적으로 나 역시 가족들로부터 내 생각에 동조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내가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새로운 책인데, “엄마는 방문을 잠그고 자물쇠를 채웠어요”처럼 엄마는 오래된 책과 함께 나를 감금해 버린다. 당연히 획일화된 전통적인 교육 방식만이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엄마의 교육 방식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읽지 않고 덮어버린 나는 당신의 책”이 의미하는 것처럼 나의 교육은 엄마의 교육 방법과 엄마가 만든 교육목표에 의한 강압적 교육이 되었고 세상 어디에도 나만을 위한 책(교육)은 없었단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의지라고는 전혀 없는 빈방에서 세상의 어떤 책이나 어떤 꿈도 찾을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유년 시절 시인의 성장에 관한 회상의 이야기인데, 이것은 시인 개인의 성장통이라기보다는 동시대를 살아 온 모두의 어두운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특히 “나무는 자라서 어디로 갈까요?”에서 말하는 나무란, 어린아이를 상징하는 이른바 꿈나무를 메타포로 삼은 말로 서정적 자아의 심리적인 상실에서 오는 허무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엄마는 방문을 잠그고 자물쇠를 채웠어요”라는 부분도 실제 부모가 어린 자녀를 방안에 감금시켰다기보다는 전통적인 교육적 가치관을 위해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시의 내용을 상황론의 측면에서 볼 때,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지만, 수 세기 전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우리 교육도 많이 변했다는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아무튼 지금의 교육을 받는 세대들이 생각할 수 없는 기성세대의 교육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하는 논리라고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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