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나는 손을 잡았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나는 손을 잡았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13 13:39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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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나는 손을 잡았다.

숲으로 가는 길은 좁고 선명했는데 친구는 그 길을 비밀이라 불렀다 친구의 머리 위로 형상이 어렴풋이 피어났다
소외감이라고
발음해 보았다 친구가 지워졌다

피부에 빛을 숨기고 있었어
내가 있다는 걸 잊었는지 놀라는 눈치였다
등에 메고 있는 가방을 살짝 들어주자 미소를 지었다 옥수수 냄새와 이름 모를 껍질 냄새가 섞여 떠 있다 사라졌다
나는 손을 잡았다.

여기 뭐가 있어
가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랑 내가 갖고 싶어하는 단어
아 우리가 이 길을 오래전부터 걷고 있었구나
너는 왜 가방도 없이 돌아가
너무 많은 것은 담은 가방은 들 수가 없으니까
대답하지 않았다
새로 생긴 습관이야, 라고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숲을 어디에 두었어 친구도 나도 묻지 않는다 오래전에도

본 듯한 눈이 내렸다
친구는 사라지고 가방이 열린 채 눈 위에 놓여 있다 나는 가방을 둘러메고 다시 걷는다 바닥에 비밀을 흘리면서

미안해

(이우성의 ‘영원’)

넋두리 같은 이야기 같지만, 곰곰이 음미해 보면 상당한 의미가 있다. 친구와 숲으로 간단다. 그러니까 아무도 눈여겨보는 이 없는 길을 친구와 함께 걷는다는 것인데, 친구라는 존재를 가만히 음미해 본다면, 일반적인 친구가 아닌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등장하는 구성원이라고 해야 할까. 비밀이라는 말에 소외감을 느끼거나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던 존재, 그러나 어느 날 작은 도움이 계기가 되어 동류의식을 느끼게 되고 손을 잡고 함께 할 수 있는 존재, 그렇게 서로가 호감을 가지면서 점차 동료가 되어 가는 존재, 그러다 어느 순간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것처럼 느껴지는 존재 우리는 이런 사연들을 사회관계 형성이라고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말처럼 사람은 사회를 떠나서 살 수가 없으며 관계란 대단히 중요한 삶의 형성 과정이다.

우리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친구가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친구란 인간관계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친구와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하기도 하고 서로 협조하기도 하는 것이다. “네가 생각하는 숲을 어디에 두었어 친구도 나도 묻지 않는다 오래전에도”처럼 그렇게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말처럼 ‘너와 나’가 되는 과정에서,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못했을 때, 엄마가 된다거나 아버지가 되기도 하는 인생의 친구…, 어느 순간 그러한 친구가 문득 사라졌을 때(죽음이라고 하든지) 그 친구를 대신해서 세대교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친구의 역할을 하게 되는 시대가 오면 그 친구가 메고 있었던 가방을 대신 메고 걸어야 할 시절은 분명히 오리라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

재미있는 것은 “친구는 사라지고 가방이 열린 채 눈 위에 놓여 있다. 나는 가방을 둘러메고 다시 걷는다 바닥에 비밀을 흘리면서”이다. 친구(앞세대)는 사라지고 열린 가방이 눈 위에 있다는 것은 친구의 일을 내가 이어가야 한다는 것과 눈치 빠른 독자께서는 눈치를 챘겠지만, 냉철한 현실 세계를 차가운 눈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시제가 ‘영원’이라서일까 시상에서 화두로 삼고 있는 공간적 시간적 배경이 매우 광범위하다.
결국 인간은 혼자 왔지만, 관계를 통해서 사회를 형성하게 되고 때가 되면 다음 세대에게 관계를 물려주는 의식의 연속이 시인이 말하는 ‘영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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