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4.03.20 10:43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어제까지 살아있던 사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들의 두 개의 무덤을 넘어
마지막 날이 예고된 마야 달력처럼
뚝 끊어진 길을 건너
돌아오지 않을 숲속엔
정수리에서 솟아난 나무가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수많은 손바닥이 흔들린다
오늘의 얼굴이 좋아 어제의 꼬리가 그리워
하나하나 떼어내며 잎사귀 점치면
잎맥을 타고 소용돌이치는 예언, 폭포 너머로 이어지는 운명선
너의 처음이 몇 번째인지 까먹었다

톡톡 터지는 투명한 가재알들에서
갓난 내가 기어나오고
각자의 태몽을 안고서 흘러간다
물방울 되어 튀어 오르는 몸에 대한 예지
한날한시에 태어난 다른 운명의 손가락
눈물 흘리는 솜털들
나이테에서 태어난 다리에 주름 많은 새들이
내일이 말린 두루마리를 물고 올 때

오늘부터 삶이 시작되었다
점괘엔
나는 어제까지 죽어 있던 사람

(권민경의 ‘오늘의 운세’)

이번 시는 서술 방법 면에서는 논술적인 형식을 띠고 있어서 첫 번째 연이 서론 부분에 해당한다면 마지막 연은 결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서론에서 어제까지 죽고 오늘 삶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부터 다소 파격적이다 싶지만, 지금까지의 삶은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신변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뜻으로 문제의 제기가 되는 부분이다.

이어서 본론으로 들어서면서 할머니들의 두 개의 무덤이나 마야의 달력이 등장하는데 이런 내용은 오래전에 지나간 어떤 사연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뭇가지에서 꽃이 핀다는 것이나 손바닥이 흔들린다는 것도 같은 의미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리고 “어제의 꼬리가 그리워”라는 말처럼 간혹 그 지나간 일에 대한 아쉬움과 일(사연)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잘 모르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전반부는 과거 회상 부분이 되고 정작 말하고 싶은 부분은 후반에 있다.

“톡톡 터지는 투명한 가재알들에서 / 갓난 내가 기어 나오고”라고 한다. 투명하다는 말은 숨김이 없다는 뜻이며, 가재알은 한꺼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가 태어나온다는 말이니, 객관적인 시각에서 거의 동시에 같은 조건 같은 시간대에서 태어난다는 말이다. 그러니 모두의 운명은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각자의 태몽을 안고 흘러간다’면서 성장 과정이나 결과가 다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날한시에 같은 장소에서 태어났는데, 어째서 운명이 다를 수 있을까? 운명학에서 말하는 논리와는 부합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이것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즉 운명이란,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갓난 내가 기어 나오고 / 각자의 태몽을 안고서 흘러간다”라는 말처럼 어린 시절이 지나고 먼 훗날 삶을 뒤돌아보는 날이 올 때 나는 얼마만큼 내 일에 최선을 다하였는가에 달려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개척해 나간다는 말이 정답이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보장된 내일(미래의 운명)은 두루마리 속에 있어서 파랑새는 누구에게 행운을 물어다 줄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어제까지의 삶이 잘못되었던 삶이라면, 오늘부터는 기꺼이 새로운 삶이 될 수 있도록 생활 방식을 고치라는 의미다. 따라서 시인이 ‘오늘의 운세’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번 시는 본론의 전반부에서 다소 중언부언한 느낌이 있지만, 나름 교훈적인 의미가 깊은 시라고 생각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